北 한미 갈라치며 南 떠보기..전문가 "실무협상? 글쎄"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했지만 동시에 한국과 미국에 대한 '갈라치기' 행보를 이어가며 우리를 향해서는 '선결과제 해결'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한반도에는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또다시 경색 국면에 돌입할지 모른다는 회의론 등 상반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북한은 8월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해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끊은 지 55일 만인 지난 4일 연락선을 전격 복원했다.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10월 초 연락선 복원'을 언급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한은 그러면서 관영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통신선 재가동의 대가'를 남겼다. 통신은 "남조선은 중대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최근 한 차례 연락선 차단을 한 선례가 있는 만큼, 사실상 남북 간 '협상의 주도권'은 북측에게 넘어가 있는 모습이다. 특히 임기 말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북한은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북한이 언급한 중대과제는 '서로에 대한 존중 보장' '타방에 대한 편견적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 태도 철회' '적대시 관점·정책 선 철회' 등이다. 이른바 '이중 잣대 철회'는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 행위를 '도발'로 규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적대시 정책 철회'는 궁극적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뜻하는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 '스냅백'(위반 시 제재 복원)이라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내걸며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반대급부'를 적극 고려하자는 취지에서다.
여기에는 북한이 스냅백 조항을 담은 대북제재 완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북한이 제시한 조건들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에 비춰볼 때, 이는 북측이 진정으로 원하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연락선 복원과 조건을 함께 제시하는 북한의 이중 행태에 청와대와 정부는 통신선 복원에 대한 적극적인 환영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며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연락선 안정적 운영에 일단 집중하며 북측의 중대과제 해결 요구에 대해서는 "선결조건으로 보기보다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함께 풀어 나가야할 문제"라며 '일단 만나자'라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한국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갈라치기'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더욱 교활해졌다"며 비난의 날을 세운 뒤 북한은 '통남배미'(通南排美·남한과 통하고 미국은 배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5일 리철룡 조국통일연구원 연구사의 기고문을 통해 "북남관계 개선은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누구의 도움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며 사실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개인 필명의 글인 만큼, 공식 입장보다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조국통일연구원이 통일전선부의 산하기구라는 점에서 북한이 향후에도 '한미 이간' 전략을 이어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일단 남북 간 연락선이 정상 가동되고 있는 것은 남북 협의의 첫걸음이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임을 감안해 남북 간 화상형식의 실무협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을 내놓는다.
남북 연락선이 복원 이틀째인 5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시통화와 동·서해 지구 통신선은 물론이고 '국제상선공통망'에도 응답했다.
반면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단 북한은 한국의 대응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와서 적극적 대북 협력 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북한이 대외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갑자기 남북관계를 위해서 (적대 정책 철회 등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을) 양보하면서까지 실무회담을 할 거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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