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낭트 대성당 방화범은 왜 살인까지 저질렀나

파리·이유경 통신원 2021. 10. 6.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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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셍가는 지난해 낭트 대성당 방화 혐의로 체포된 이후 구속 기한이 만료돼 풀려났다. 정신병력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수도원으로 돌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지난해 7월 화재가 발생한 프랑스 서부 낭트 대성당. 프랑스 고딕 건축양식을 대표한다. ⓒAP Photo

지난 8월9일 프랑스 남서부 방데 지역의 몽포르탱 수도원 올리비에 메르 원장이 살해됐다. 용의자는 범행 후 직접 경찰서에 가서 “수도원장이 사망했다. 감옥에 보내달라”고 말했다고 발표됐다. 용의자 이름은 에마뉘엘 아바이셍가. 르완다 출신 남성이다. 아바이셍가는 지난해 7월 프랑스 북서부의 낭트 대성당 화재 용의자이기도 하다. 재판을 받기 전 구속에서 풀려난 사이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7월18일 낭트 대성당 화재는 그 자체로 충격을 부른 사건이다. 15세기에 착공해 1891년 완공된 이 성당은 프랑스의 고딕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성당을 지키기 위해 소방관 100명 이상이 출동했으나 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손상을 입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사건을 애도했다. 조아나 롤랑 낭트 시장은 현장을 방문해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낭트 시민들의 공간이며 성당이기에 우리는 오늘 모두 슬픔에 빠졌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공작 섬(낭트)의 고딕 보물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출동한 소방관들을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장 카스텍스 총리는 당일 오후 현장을 방문해 “(낭트 대성당의) 빠른 재건을 위해 정부가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모금에 나섰다. 지난해 7월20일 문화유산재단(Fondation du patrimoine)의 페이드라루아르 지역 대표 장피에르 보시에는 라디오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낭트 대성당 재건을 위해 국민들이 기부한 기금이 “이틀 만에 2만7000유로(약 3700만원)가 넘었다”라고 답했다.

수사 당국은 화재 당일부터 고의 방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낭트 검사장 피에르 세네는 공식 발표에서 “성당 내 오르간, 중앙 홀 좌우측 등 모두 세 곳의 발화 지점이 서로 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의도적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수사 당국이 주목했던 용의자가 바로 2012년 프랑스로 이주한 에마뉘엘 아바이셍가다. 그러나 성당 측은 아바이셍가에 대해 “수년간 낭트에 살면서 성당 숙소에 머물러, 잘 알고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이 아바이셍가를 구류했다가 하루 만에 풀어주기도 했다.

2016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는 에마뉘엘 아바이셍가(왼쪽). ⓒVatican Media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해 7월26일 반전이 일어났다.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검찰이 다시 아바이셍가(성당 숙소에 살며 화재 전날 성당 문을 닫았다)를 구류했는데, 그가 범죄를 시인한 것이다. 에마뉘엘 아바이셍가는 담당 변호사를 통해 “저지른 일을 매우 후회한다”라고 밝혔는데,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일부 교구원은 아바이셍가가 프랑스 체류 비자를 여러 달 전부터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올리비에 메르 살인 사건’ 직전까지도 아바이셍가의 방화는 프랑스 내에서 꾸준히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7월15일 일간지 〈라 크루아〉는 ‘낭트 대성당 방화범의 머릿속에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에마뉘엘 아바이셍가의 범죄 동기에 대한 분석이었다. 지난 1년간 용의자 주변인을 취재한 기자는 아바이셍가가 열세 살에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을 겪었으며, 아버지가 처형당하고 삼촌은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후 르완다에서 학업과 경찰 생활을 이어간 아바이셍가는 32세에 프랑스에 왔고 네 번에 걸쳐 프랑스 난민무국적자보호국에 망명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방화를 저지른 39세까지 불법체류자 신세였던 것이다.

난민에 적대적 여론에 기름 부어

에마뉘엘 아바이셍가가 살해한 몽포르탱 수도원 올리비에 메르 원장. ⓒCatholic News Service

아바이셍가는 지난해 낭트 대성당 방화 혐의로 체포된 이후 구속 기한이 만료돼 2021년 5월 풀려났다. 이후 몽포르탱 수도원에서 지낸 그는 6월20일부터 7월29일까지 정신병력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뒤 수도원으로 돌아가 이번 살인을 저질렀다. 더욱이 구속에서 풀려난 뒤에 한 달에 두 번 감시기관에 출석해야 하는 등 법적 감독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구속에서 풀려난 범죄자가 재범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하자 정부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다. 더욱이 그가 르완다 출신이란 점에서 난민에게 적대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살인 사건 당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마린 르펜은 트위터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프랑스에서는 난민이 낭트 대성당에 불을 지르고도 추방당하지 않기 때문에 신부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는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의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연합의 유럽의회 의원 조르당 바르델라는 트위터에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선량한 시민들의 QR 코드는 감시하면서 르완다 출신 방화범 난민은 추방하지 못하는 게 우리 나라의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백신 증명서를 둘러싼 논란과 이 사건을 연결한 것이다. 공화당은 공식 성명에서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먼저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법이 그 구실을 못한다면 국민 안전을 위해 법을 바꿔야 한다”라고 밝혔다.

사법체계의 허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평도 있다. 구속부터 재판까지 기한이 너무 길고, 구속 만료 후 ‘법적 감독’에 빈틈이 있다는 비판이다. 사건 당일인 8월9일 오후 범죄 현장을 방문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아바이셍가의 추방 문제를 두고 “용의자가 프랑스 사법 당국의 법적 감시를 받고 있는 이상 국외로 추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사법관연합 셀린 파리소 대표는 8월10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 인터뷰하면서 “사법기관이 특별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사법절차가 잘 지켜졌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재판을 앞두고 있는 경우 구속에서 풀려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랑스의 재판 진행은 너무 오래 걸린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구속 기한이 만료될 때까지 방화 사건에 대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8월19일 올리비에 메르 수도원장 살해 사건을 담당한 라로슈쉬르용 지방 부장검사 야니크 르 고아테르는 해당 사건에 대한 사법수사를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이번 수사 개시에 대해 에마뉘엘 아바이셍가가 “사건 당일 경찰에 가서 ‘수도원장이 사망했다, 감옥에 보내달라’는 말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자신이 올리비에 메르의 살인에 가담했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해 건강상태를 이유로 조사에 임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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