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공인중개사 살해 후 극단선택..이웃들 "전세사기 억측 황당"
"참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 누구와 싸울 이유가 없는데…"
5일 오전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앞. 입구에는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었으며 끊임없이 현장을 찾는 인근 주민들의 발자국이 묻어 까맣게 변한 전단지가 뒹굴었다. 미용실·옷가게·부동산 등 상가 3개가 입점해 있는 2층 규모의 작은 건물이지만 모두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주민들은 가게 앞에 모여 "지난주에도 얼굴을 봤는데 믿을 수 없다"며 수군거렸다.
이날 사건이 발생한 건물 내 가게들은 모두 영업을 중단했다. 인근 가게 상인들은 "다들 고인의 문상을 갔다"며 "그게 아니더라도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문을 열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고 현장을 보려는 주민들이 잇따라 가게 앞을 찾으면서 되레 방문객은 늘었다. 건너편 가게 상인은 "살아 있을 때는 안 오더니 사람들 마음이 참 야속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피해자가 숨진 사무실에 쳐져 있던 폴리스라인(출입 통제선)이 걷히고 대신 철제 셔터가 가로막았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인근에서 20년간 살아왔다는 정모씨(67)는 "이곳 근처는 사람들도 착하고 마을 자체가 넓지 않아 서로서로 옆집 아들 대학까지 아는 동네"라며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이곳 사람을 살해했다니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생전 피해자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웃들은 '참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알려진 '전세 사기'나 '주택 하자' 등이 살해 동기가 됐을 것이라는 보도도 터무니없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C씨(54)는 "(고인이) 누구와 싸울 이유가 없다"며 "이 날씨에 결로(추운 날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 문제로 공인중개사를 찾아왔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했다.
가해자는 경기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차를 몰고 이곳에 찾아와 흉기를 휘둘렀다. 인근 상인들 중 사건 당시 가해자의 모습을 보거나 소리 등을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가해자는 범행 후 타고 온 차를 몰고 200m 떨어진 인근 4층 빌라 옥상으로 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빌라로 가는 길에는 어린이집·치안센터가 있으며 100m 내에 어린이공원이 있다.
범행 후 피해자가 발견된 것은 오전 11시 30분쯤이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피해자의 딸과 아들이 경찰관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사무실 문을 개방하고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가해자는 범행을 저지른 뒤 피해자의 딸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범행 동기를 인터넷에서 벌어진 갈등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 방송의 여성 진행자인 B씨의 가족 중 한 사람의 방송에 접속한 A씨가 채팅방에서 '비매너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퇴장을 당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A씨가 B씨를 찾아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숨진 B씨와 여성 진행자는 가족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전세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해 가해자가 앙심을 품었다'는 주장 역시 부인했다. 일부 주민들과 커뮤니티 등에서는 '가해자가 거주하던 집에 하자가 생겨 평소 공인중개사와 갈등을 빚어 왔다'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사실무근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가족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억측을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인근 CCTV를 확보하는 한편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또 명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조만간 피해자 부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현재까지 이번 범행이 A씨의 계획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경찰은 "정확한 동기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가해자가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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