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서 적발된 '물뽕' 96만명 투입 분.. 지난해보다 61배↑
시중 유통 수준·범죄 활용 규모 깜깜이..처벌도 약해
#20대 여성 ㄱ씨는 지난 2019년 3월 호프집에서 남성 ㄴ씨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ㄴ씨는 잠시 약국에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가 미리 준비했던 고체 상태의 약물을 전자레인지로 녹여 ㄱ씨 술잔에 탔다. ㄴ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목격자가 ㄱ씨에게 주의를 주고 경찰에 신고해 ㄴ씨는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ㄱ씨의 혈액과 소변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ㄴ씨가 몰래 섞은 약물은 ‘1.4 부탄디올’로 흔히 ‘물뽕’이라 불리는 GHB(감마하이드록시낙산)의 원료다. 재판부(인천지법)은 상해미수 혐의로 ㄴ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20대 여성 ㄷ씨는 지난 2019년 4월 지인인 ㄹ씨가 준 머그잔에 담긴 술을 마시고 20분 만에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극심한 신체 통증으로 전날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ㄷ씨는 ①짧은 시간에 ②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한 점을 이상하게 여겨 ㄹ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ㄷ씨에게선 졸피뎀이 검출됐다. 1심 재판부(대구지법)는 피고인에 대해 강간·상해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졸피뎀을 사용한 혐의는 무죄였다. “피고인이 졸피뎀을 구입한 이력이나 증거”를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8월까지 신종 마약 적발량이 지난해에 견줘 4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관세청을 통해 제출받은 ‘신종 마약 단속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8월까지 신종 마약 적발량은 9만4532g으로 전년인 2만1378g보다 4.4배 증가했다. 관세청은 신종 마약 가운데 성범죄에 자주 사용되는 약물 6종(MDMA·LSD·GHB·케타민·러쉬·기타)를 추출해 장혜영 의원에게 보고했다. 올 한해를 기준으로 하면 이들 적발량과 전년 대비 증가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뽕’이라 불리는 GHB 적발량이 특히나 급증했다. 지난해 GHB 적발량은 469g이었는데, 올해는 그 61배에 달하는 2만8800g이 적발됐다. 이는 96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양이다. 흔히 ‘엑스터시’라 불리는 MDMA 적발량은 지난해 3328g에서 6060g, LSD 적발량은 487g에서 931g, 러쉬(RUSH) 적발량은 1만1454g에서 1만7947g으로 늘었다. 졸피뎀 등 ‘기타’ 신종 마약 적발량도 전년도 4572g에서 3만6234g으로 크게 늘었다.
세관별로는 인천에서 전체 88%(8만3421g)에 달하는 신종 마약이 적발됐으며, 부산(6.9%·6604g)이 뒤를 이었다. 불과 5년 전인 2016년 신종 마약 적발 건수가 ‘0’건이었던 광주세관에서도 올해 3097g의 신종 마약이 적발됐다. 유입 경로가 ‘개발’되고 있다는 얘기다.
데이트 강간에 주로 쓰이는 약물이 매년 더 많이, 더 다양한 지역에서 적발되고 있는데도 약물 사용 성범죄 처벌 규정과 적발 역량 모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선 약물 사용 성범죄를 처벌할 별도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 형법 299조(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은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동시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약류 관리법은 “마약류의 자가 복용·유통·거래·소지를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타인에 대한 사용 규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은 미비”하다는 지적(국회 입법조사처, ‘외국의 데이트 강간 약물 이용 성범죄 규제와 시사점’)을 받는다.
미국은 21년 전인 지난 2000년 연방법으로 ‘데이트 강간 약물 금지법’을 제정했다. 모르는 남성이 준 탄산음료를 마신 후 10대 여성 두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법은 GHB(물뽕) 등을 데이트 강간 약물로 규정하고, 이 약물을 이용해 범행을 하다 붙잡히면 최대 징역 20년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 또 매년 데이트 강간 약물 이용 건수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범죄 현황도 일별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범죄통계인 경찰 ‘통계연보’나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약물 이용 성범죄 관련 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도 보고서에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오남용되는 약물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성폭력 범죄에 연루된 현황을 조사하고 통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지난 2015년 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약물 사용 성범죄 증가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2006~2012년 국과수 본원에 약물 감정이 의뢰된 성범죄 사건은 총 555건(2006년 28건, 2007년 10건, 2008년 38건, 2009년 75건, 2010년 91건, 2011년 133건, 2012년 180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2019년 클럽에서 남성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GHB의 사용을 묵인하거나 판매했다는 의혹이 나온 ‘버닝썬 사건’이 터지기 7년 전 집계된 자료뿐이다.
단속 역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마약 조사에 투입된 인력은 인천·부산·서울·김해공항 세관 등 총 4개 기관 61명이다. 인천세관에 전체 인력의 77%(47명)가 집중되어 있다. 부산·서울세관은 전담 인력이 없어 일반 직원이 투입돼 마약 조사 업무를 겸하고 있다. 관세청이 보유한 마약 탐지기 82대 중 13대(15%)는 사용연한이 경과됐다. 장혜영 의원은 “버닝썬 사건 뒤 여성들의 물뽕 등 데이트 강간 약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급증하는 마약 적발률, 변화하는 마약 보급 경로 등을 분석해 적절한 곳에 인적·물적 인프라를 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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