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구호 "함께 살자!"

한겨레 2021. 10.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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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그 사진을 수십번도 더 사용한 뒤에야 정작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그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크 때문에 숨 쉬기 답답해 보이고 아들의 잘생긴 얼굴을 너무 많이 가리고 있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의 사진은 김씨가 발전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직장 동료가 찍어준 것이라고 한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널리 알려진 사진이 있다. 김용균씨가 사망하기 불과 열흘 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은 비정규직 문제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에 관한 주장이나 홍보를 할 때마다 그 사진을 썼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

강의할 때마다 그 사진을 수십번도 더 사용한 뒤에야 정작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그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크 때문에 숨 쉬기 답답해 보이고 아들의 잘생긴 얼굴을 너무 많이 가리고 있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의 사진은 김씨가 발전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직장 동료가 찍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용균씨 묘소에는 그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의 조형물을 세웠다.

다른 사람의 아픈 기억을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좋은 취지라고 해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용산 참사’ 또는 ‘세월호 참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지적당한 경험이 있다. 유족이나 희생자와 매우 가까웠던 지인들 입장에서는 ‘참사’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언뜻 가슴이 후벼파이고 살점이 에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이 겪어야 했던 아픈 경험을 소재로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몇번이나 했다.

관객으로서 나의 소양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앞뒤 맥락을 아무리 따져 봐도 딱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대목에서 ‘운동권’ 출신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개운치 않은 느낌이 며칠 동안이나 지속되기도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방호복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 파업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짧은 장면은 2009년 쌍용차 사건 당시 실제 모습을 매우 비슷하게 묘사했다. 당시 실제 경찰 진압 장면 동영상을 본 외국인들은 “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냐?”고 물었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이라는 답변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 폭행을 직접 당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드라마의 그 장면을 봤다면 오래전 가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괴로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은 해고 노동자가 보기에도 쌍용차 사건 당시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 “함께 살자!”는 정신을 끝내 지키려고 애쓰는 인물로 느껴졌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기업이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때에는 반드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다음에 규정한 단서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해고란 생존의 근거를 박탈당하는 매우 중대한 피해이므로 회사로서는 경영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두 강구해보고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경영을 개선할 수 있었음에도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것이라면, 그 해고는 무효가 되어 해고된 노동자들을 모두 복직시켜야 한다.

‘뉴 패러다임 경영’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경영인 출신 정치인 문국현씨는 쌍용차 사건 당시 일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할 것이 아니라 전체 직원의 노동시간을 고르게 단축시킴으로써 경영 상태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노동조합도 근무형태 변경과 무급휴직 등을 통해 인건비 2800억여원을 절감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이는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보다 인건비를 1천억원 이상 더 절약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이 “함께 살자!”는 구호로 함축됐고 충분히 실현 가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해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만연히 정리해고를 한 사건이었으므로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노동법적 측면으로도 당연히 무효 판결을 받았어야 마땅했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유는 당시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밀실 거래’를 한 사건 중에 이 사건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함께 살자!”는 구호는 경영 개선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명예퇴직을 요구하거나 정리해고를 시도하는 모든 사업장에서 여전히 유효한 매우 귀한 원칙이라는 사실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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