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위에 싹튼 대장동 '신폐'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 | 법조팀장
법조팀에서 팀장으로 일하다 보니, 요즘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검찰의 특혜 의혹 수사와 관련한 물음일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대장동 개발과 같은 사업에 투자를 제안받거나, 관련 사업 정보가 있는가”라는 식의 말들이다. 이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이익을 본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와 천화동인7호 최대 주주 배아무개씨가 언론사 법조팀장 출신인 탓에 마주하는 질문들이다.
물론, 답은 뻔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짐짓 궁금하다는 듯 묻고,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성심성의껏 답한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초유의 사건 앞에서 서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나누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들이 거둬들인 수백억, 수천억원의 수익금과 국회의원 자녀 등에게 건네진 수십억원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실없는 말로 수다를 떠는 것은 일종의 준비운동인 셈이다. 혈압 올라갈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도 사실 대장동은 대한민국 사회 지도층의 불의와 위선을 잘 보여주는 압축판이었다. 대장동 개발사업의 첫 단추인 민간 사업자 공고가 나가기 한달 전인 2015년 1월, 이 일대를 취재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쫓다 보니 대장동에 닿았다. 당시 대장동 일대 땅 소유주를 확인해보니, 이완구 후보자를 비롯해 전직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전직 시장 등 10여명의 정·관·재계 인사 또는 그 자녀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2000년대 초반, 녹지보전지역 등으로 묶여 있던 땅이 개발 가능한 땅으로 바뀌자 개발 이익을 노리고 유력 인사들이 뛰어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자녀 등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이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이곳 땅을 갖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 인접한 단독주택 터다. 공시지가를 따져보니, 그들이 땅을 보유한 지난 20년 동안 땅값은 15배가 뛰었다. 1억원을 주고 산 땅이 15억원이 된 셈이다. 물론 실거래가격은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올랐을 것이다.
투기와 욕망이 응축된 ‘적폐’ 위에 대장동 특혜 의혹이라는 오늘의 ‘신폐’가 완성됐다. 투기세력이 판치던 땅이 민관개발이라는 제3의 길을 만났지만, 초과이익 환수 장치를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탓에 지금의 결과가 빚어졌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은 사업자 선정을 비롯해 민간 사업자가 개발 이익을 과도하게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설계된 배경에 특혜가 있었는지와 개발 이익이 정치권과 성남시 등으로 흘러갔는지 여부다.
대장동 의혹의 교훈은 민관개발을 진행할 때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대선이라는 빅이벤트가 없었다면 자칫 묻힐 수도 있었던 일이다. ‘토건-법조 카르텔’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도 수확이다. 대법관, 검찰총장, 특별검사, 법무부 차관, 검사장 출신 유력 법조인들이 정의보다는 사적 이익을 위해 토건 세력과 어떤 식으로 얽히고 관계를 맺어왔는지, 또 전관예우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만천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대장동의 ‘대장’(大庄)이라는 말은 ‘고관 등의 커다란 사유지’란 뜻이다. 투기세력이 판치던 때와 작금의 사태를 고려하면, 절묘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장이라는 말에는 다른 뜻도 있다. 바로 ‘매우 철저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이는 대장동 개발사업이 지향했어야 할 가치였다. 역사가 전하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경고다. 지난 20년간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돼온 대장동을 되돌아보면 이 말은 어김없이 옳다. 대장동은 결국 투기세력과 민간 업자의 배만 불린 형국이 돼버렸다. 교훈을 얻지 못한 대가는 이렇게 혹독한 법이다.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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