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세트, 딸과 읽던 그림책에서 힌트 얻었죠"

고경석 2021. 10. 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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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채경선 미술감독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미로 같은 계단은 초현실주의 판화가 에셔의 무한계단에서 힌트를 얻었다. 넷플릭스 제공

"세트장에 가면 현대미술 전시를 보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정재)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사람을 홀리게 만들 정도였다."(박해수) "판타지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고 그 공간 안에 있는 느낌이 황홀했다."(정호연)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출연 배우들은 틈이 날 때마다 미술 연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 평단과 시청자들도 잔혹한 생존경쟁의 무대가 되는 파스텔 톤의 동화적인 세계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온라인 화상으로 만난 채경선 미술감독은 "주로 영화 작업만 하다 넷플릭스 작품은 처음 했는데 전 세계에서 반응이 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동화적 세트는 어린 딸과 함께 읽던 그림책에서 힌트 얻었죠"

채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을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았다. 황 감독의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함께하며 10년간 호흡을 맞춰 왔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미술을 맡기며 그에게 '한국만의 판타지물'을 주문했고, 채 감독은 아동용 그림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기존의 서바이벌 게임 영상물은 한 편도 본 게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창의적 상상력을 가져오려 노력했죠. 제 딸과 그림책을 함께 보면서 동화적이고 우리나라 정서가 깃든 판타지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0, 1980년대 유년기 시절의 향수와 동심이 담긴 공간을 펼쳐 주고 싶었어요. 잔혹하고 잔인한 스토리가 그와 상충하는 이미지 때문에 더욱 극대화해 보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의 숙소 세트. 감시자들의 무대는 출구 없는 이들이 향하게 되는 터널을 상징하고 계단식 침대는 상대를 누르고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하는 경쟁사회를 의미한다. 넷플릭스 제공

작품 공개 후 인기를 끌고 있는 소품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인형도 오래 전 교과서에 나온 ‘철수와 영희’의 영희 외모에 딸아이의 짧은 앞머리를 결합시켜 만들었다. 채 감독은 “황 감독이 너무 귀엽거나 부드러운 외모보다는 약간 기괴한 느낌이 있었으면 했다”며 “얼굴 표정과 의상을 다양하게 스케치한 뒤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 인형극의 마리오네트 같은 느낌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은 컴퓨터 그래픽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세트를 직접 짓고 전화기나 대형 돼지저금통, 인형 같은 소품도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극대화했다. 채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간이 실재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실제로 그 안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큰 목표였다"며 "배우들이 실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주로 강렬한 핑크와 녹색의 대비 속에서 진행된다. 녹색이 주를 이루던 과거 학교 운동복으로 단체 의상이 결정된 뒤 게임 참가자들 주변의 공간과 감시자들의 의상은 핑크로 정해졌다. 채 감독은 "과거 교과서나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색 바랜 핑크와 민트를 주된 컬러로 잡고 시작했다"면서 "유아적이고 연약하며 사랑스러워 보이는 핑크를 감시자들 의상 색으로 하면 공포감이 두 배가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골목길 세트. 넷플릭스 제공

"구슬치기 하는 골목길, 가장 공들인 세트"

미로 같은 계단은 네덜란드 출신의 초현실주의 판화가 에셔의 작품 속 무한계단을 참고했다. "출구도 입구도 어딘지 모른 채 참가자들은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과 이들이 미로 같은 공간에서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감독님도 저도 스태프들도 그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도색팀도 어디에 무슨 색을 칠했는지 잘 모를 정도였죠."

참가자들의 숙소는 터널과 대형마트, 콜로세움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채 감독은 "버려진 사람들에게 터널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감시자들이 서 있는 공간은 터널 벽면 마감재를 썼다"면서 "대형마트에 쌓인 물건과 같은 처지라는 의미로 침대를 구성했는데 경쟁사회를 은유하는 계단식, 사다리식으로 구성하다 보니 결국엔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 모양이 됐다"고 설명했다.

채경선 미술감독. 본인 제공

구슬치기를 하는 골목 세트는 가장 공을 들인 것 중 하나다. 골목 구석의 이끼까지 심어 넣을 정도로 오래전 골목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하늘과 조명은 지나칠 만큼 인공적이다. 채 감독은 "영화 '트루먼쇼'처럼 진짜와 가짜가 섞인 이중적인 의미를 주고 싶었는데 정들었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양면적 감정도 진짜와 가짜 사이의 혼란에서 왔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2010년 '조금만 더 가까이'에 참여하며 미술감독으로 데뷔한 채 감독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상의원’으로 대종상 미술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참여한 작품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서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한국 영상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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