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장동 원주민의 恨

강경희 논설위원 2021. 10. 6. 03: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장동에 둥지를 튼 날이 2005년 10월 30일이네요. 마을버스도 없는 그 시골마을에서 회사 출퇴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녁 8시만 되어도 가로등이 없어 깜깜했거든요. 그런 논두렁 밭두렁을 임신한 몸으로 용감하게 다녔지요.” 성남시 대장동에 살다 이사 간 여성이 요즘 대장동 개발 비리로 장안이 떠들썩하자 인터넷에 ‘대장동 원주민의 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모습. /연합뉴스

▶대장동은 원래 50명 정도가 농사짓고 살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소 키우는 집도 있었다. 대장동 인근에 태봉산이 있는데 조선 인조의 태(胎)가 묻혀 있어 태장산 또는 태봉이라고 부른다(성남시 40년사). 대장동 명칭도 거기에서 영향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2004년 무렵 대한주택공사(현재의 LH)가 대장동을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개발하겠다고 했는데 계획이 유출돼 개발은 실패하고 투기만 일으켰다. 여기저기 빌라와 상가 주택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유입돼 200명 정도 사는 마을로 커졌다. 2009년 재추진된 LH 공공 개발도 민간 업자들의 금품 로비로 무산됐다.

▶대장동 원주민 몇몇이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성남의뜰’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애초 원주민들은 평당 600만원 하던 땅을 시세의 절반인 270만~300만원에 ‘성남의뜰’에 넘기고 이주자 택지 분양권을 받았다. 민관 개발이라는데 땅은 헐값에 수용되고 택지 분양가는 너무 높게 책정돼 원주민 상당수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성남 외곽으로 전세나 월세 얻어 밀려났다. 재판은 시행사 ‘성남의뜰’은 상법에 따라 설립된 주식회사여서 공기업인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적용되는 보상 규정을 적용할 수 없고 따라서 높은 분양가가 정당하다는 기막힌 판결이 나왔다. 땅을 수용당할 때는 공공 개발이라고 헐값에 당하고, 아파트 분양은 민간 사업이라고 높은 분양가에 당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억울하다”며 분통만 터뜨린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로 벌어들인 이익 배당금 1822억원 가운데 1000억원을 지난해 성남 시민 1인당 10만원씩 재난연대자금으로 뿌렸다. 그 소식에 원주민뿐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들도 “개발 수익금은 대장동 주민들한테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장동 개발로 일확천금을 챙긴 법인 화천대유, 천화동인은 주역의 64괘에서 이름을 따왔다. 공교롭게도 한자는 다르지만 주역 64괘에 대장동(大庄洞)과 발음이 같은 뇌천대장(雷天大壯) 괘가 등장한다. ‘하늘을 요동치게 할 만한 엄청난 힘’이 뇌천대장이다. 그 결말이 궁금할 따름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