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74] 동해 가자미식해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1. 10. 6.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자미식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명절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고슬고슬하게 밥을 해서 엿기름을 섞어 식혜를 만드셨다. 쌀이 귀한 시절에 식혜를 만드셨던 것은 조상님께 올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는 식혜는 할머니가 만들었던 달콤한 감주였다. 처음 강릉에서 식해를 접했을 때, 영덕 식당에서 가자미식해<사진>를 만났을 때 동공이 커졌던 것도 이런 기억 탓이다. 고춧가루에 버무린 생선 조림도 아니고 탕도 아니었다. 발효시킨 것이라는데 젓갈도 아니었다. 지금은 일부러 속초시장과 영덕시장을 기웃거린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일부러 가자미식해를 청하기도 한다. 김치처럼 흔한 밥반찬이었는데 이제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곳도 있다.

주문진 어시장에서 만난 기름가자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1600년대 말 ‘주방문’에 생선에 곡물과 소금을 넣은 식해가 소개되었다. 옛 문헌에는 식해만 아니라 식혜라고도 적었지만, 생선에 소금을 더한 젓갈[醢]에 밥이 들어갔으니 ‘식해’라고들 한다. 강릉이나 영덕 등 동해안에서는 제사상에 올리는 제물이었다. 강릉 창녕 조씨 종가에서는 제사에 사용하고 남은 생선포로 포식해와 소식해를 만들었다. 포식해는 고춧가루를 넣은 것으로 알뜰하게 살라고 이바지 음식으로, 소식해는 맵지 않은 담백한 맛으로 바깥어른 주안상에 올렸다. 지금도 내림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속초시장에서 만난 식해. 왼쪽이 명태식해, 오른쪽이 가자미식해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속초시장에서 팔고 있는 명태와 가자미식해를 만났다. 목포나 인천 어시장의 젓갈을 연상케 한다. ‘산가요록’을 보면 생선만 아니라 육고기로도 식해를 만들기도 했다. 식해는 고기에 곡물을 섞고 소금을 더한 것이 시작이지만, 이후에는 엿기름과 고춧가루가 더해졌다. 요즘 식해를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생선은 기름가자미다. 동해에서 잡히는 가자미의 절반을 차지한다. 수백미터 깊은 바다에서 저인망 어선에 잡혀 올라온 기름가자미는 밖으로 올라오면 본능적으로 끈적끈적한 진액을 토해내 몸을 감싼다. 뼈가 물러 물가지미로 더 알려져 있다. 식해는 가자미만 아니라 명태와 도루묵, 횟대, 임연수어 등으로도 만들었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과 많이 재배하는 좁쌀을 이용한 것이다. 소금이 귀한 동해안 지역에서 만들어낸 지혜로운 음식 문화다.

건조 중인 기름가지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