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항우와 유방의 차이

이영숙·동양고전학자·'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저자 2021. 10.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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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말은 곧 심리고 성향이다. 삶의 태도고, 관계의 맥락이며,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초한지’(중국 책 이름은 ‘초한연의’)의 두 영웅 항우와 유방의 ‘말’을 보면, 그 진의를 알 것만 같다. 항우와 유방은 출신과 기질, 용모 및 처신, 대인 관계에서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어, 리더십을 운운할 때 자주 비교되는 인물들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항우와 유방은 출신부터 성향까지 모두 달랐다. 항우는 명장 항연과 항량을 조부와 숙부로 둔 초나라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반면 유방은 강소성 패현(沛縣)의 평범한 집안 자손이었다. 한마디로 금수저 항우와 흙수저 유방인 셈이었다.

기원전 221년 춘추전국의 긴 분열을 종식시키고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의 화려한 행차를 본 후의 반응은 두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회계산 제의를 마친 진시황의 성대한 행차를 본 유방은 감격하여 탄식했다. “대단하군!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저 정도는 돼야지!” 가문도 외모도 능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최고 지존이 되고자 하는 야망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유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노련하게 진시황을 높이 평가하듯 말했다.

반면 항우의 외침은 거침이 없었다. “언젠가는 저 놈을 끌어내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리라!” 망국의 분노와 설욕의 다짐이 서린 외침이었다. 곁에 있던 숙부 항량이 식겁해 항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 야망, 감정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항우다.

그런 성향은 평소의 말버릇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전쟁에 임박해 항우가 주변을 향해 자주 쓰던 문장은 “어떠냐?(하여·何如)”였다. 즉 자신의 기량이 어떠냐는 과시였던 것이다. 반면 유방은 “어떻게 하지?(여하·如何)”였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견을 높이는 태도다.

그저 말의 순서만을 바꿨을 뿐인데, 전혀 다른 뉘앙스와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러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곧 ‘내가 우선이냐, 네가 우선이냐’는 뜻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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