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달팽이 집’과 화천대유
1원도 주고받지 않지만 정치·경제 ‘뇌물 카르텔’
2009년 중국에서 ‘워쥐(蝸居·달팽이 집)’라는 TV 드라마가 최고 인기였다. 대도시에서 ‘달팽이 집’만 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피땀 흘리는 서민과 부동산 개발로 ‘돈 잔치’를 벌이는 업자와 공무원의 부패상을 그렸다. 많은 중국인이 자기 얘기로 믿었다. 그해 유행어로 ‘워쥐’가 선정됐다.
중국 부동산 개발은 대부분 ‘민관(民官) 합작’으로 이뤄진다. 이른바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있기 때문에 100% 민간 개발은 있을 수가 없다. 지방 정부 등이 땅을 팔고 인허가를 내주면 민간 업체가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구조다. 개발 예정지 거주민의 ‘토지 이용권’을 헐값에 강제 수용하면서 해당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사업 성패를 가르는 토지 확보와 인허가가 사실상 보장되니 실패 가능성은 거의 없다. 14억 인구가 몰리는 대도시라면 분양은 무조건 대박이다. 그러니 ‘민’은 ‘관’을 잡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대장’을 잡을수록 사업권을 따낼 확률도 커진다. 경기도 대장동에서 벌어진 화천대유와 성남시의 ‘민관 합작’ 개발 형태와 유사하다.
그런데 중국에서 대장동처럼 민간 업자가 출자금의 1000배 넘는 돈을 벌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토지 매각 대금 등 개발 이익은 지방 정부의 공식 세수(稅收)원이기 때문에 이를 민간에 몰아줄 수는 없다. 분양가가 높을수록 지방 정부 세수도 많아진다. 그래서 ‘민관 합작’인데도 중국 아파트 분양가는 저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장동처럼 분양가를 풀어주고 그 이익은 민간이 독식하는 설계를 했다면 개발 이익 ‘환수’가 아닌 ‘포기’라고 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방 정부가 손해를 입었으니 ‘배임’도 된다. 이런 설계자는 중국에서도 처벌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관이 개발 이익을 독식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개발에 참여할 민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는 상식이다.
‘워쥐’에선 시장 비서실장이 부패 공무원으로 나온다. 남들이 보기엔 월급만으로 청렴하게 산다. 그런데 휴일이면 호화 승용차를 몰고 첩은 고급 아파트에 산다. 전부 민간 업자가 몰래 마련해준 것이다. 중국 드라마에서 뇌물을 주고받는 수법은 상상력을 초월할 때가 많다. 특혜를 준 공무원 친척을 취직시키고 거액의 월급을 주거나 주식을 나눠주는 건 기본이다. 첩이 낳은 자식을 업자 돈으로 미국·영국 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값비싼 고서화나 도자기를 길거리에서 만 원 주고 산 것처럼 선물하기도 한다. 1원도 직접 주지 않는다. 요즘 그렇게 받는 바보도 없다.
그 사이 서민은 ‘달팽이 집’을 마련하느라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런데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부동산 광풍이 한번 불면 ‘달팽이 집’은 멀리 날아간다. 그럴수록 서로 야합한 민간 업자와 부패 공무원은 배를 불린다. 지금 중국은 ‘민관 부동산 결탁’을 시진핑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방해하는 심각한 부패 구조로 본다. 반(反)부패 수사에 걸린 공직자 대부분이 부동산 결탁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대장동 개발 비리를 보고 “사과가 아니라 칭찬받을 일” “특혜 해소”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워쥐’의 부패 공무원 이름이 쑹쓰밍(宋思明)이다. 한자 뜻은 ‘생각이 밝다(思明)’인데 중국 친구들은 발음이 같은 ‘쓰밍(死命)’으로 읽었다. ‘죽을 운명’이란 것이다. 실제 드라마 끝에 교통사고로 죽는다. 부동산 개발로 민간에 천문학적 이익을 보장해주고 정치적·경제적 뇌물을 은밀하게 챙긴 공직자의 운명이 ‘쓰밍’이길 바라는 심정은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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