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돌아온 귀신, 소녀가 된 동방삭.. 설화, 콘텐츠를 입다

이기문 기자 2021. 10.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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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되어 전생의 한(恨)을 푸는 ‘장화홍련’, 꾀를 써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 장수를 누리는 ‘삼천갑자 동방삭’,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악령이 되어 산 사람을 해코지하는 ‘창귀’….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전통 설화(說話)가 소설과 음악, 웹툰의 모티프가 돼 활발히 독자와 만나고 있다.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한 현호정의 소설 ‘단명소녀 투쟁기’는 죽을 예언을 들은 소녀가 살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환상 소설. 곧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 수명을 연장하는 ‘연명(延命)설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들으며 지난 7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 8월 가수 안예은은 민담 속 귀신을 내세운 으스스한 노래 ‘창귀’로 400만이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고, 강화길의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은 장화홍련전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자가 호텔의 유령이 돼 복수하는 이야기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소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설과 민담, 설화 같은 옛날이야기를 변형한 콘텐츠는 꾸준히 나온다. 영화 ‘장화, 홍련’은 2003년 개봉 당시 관객 314만명을 동원해 역대 한국 공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영화 ‘장산범’(2017)도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리는 전설 속 귀신을 스크린에 가지고 왔다. 고려장·암행어사·조왕신 등 고전 설화를 재해석한 판타지 웹툰 ‘신과 함께’(2017)는 영화로 나왔고, 웹툰 ‘신암행어사’는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전통은 현대의 옷을 입고 탈바꿈한다. 윤경희 문학평론가는 “본래 민담에서 보수적인 요소들을 해체하고, 컴퓨터 게임 같은 진행 방식이나 캐릭터 창작 기법이 거리낌 없이 응용된다”고 분석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원전 설화 속 미성년 남성이 아닌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소녀는 초월자에게 수명을 하사받는 원래 방식이 아니라, 게임 캐릭터처럼 능동적으로 문제 상황을 타개해나가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 간다. 안예은의 ‘창귀’는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처럼 국악을 디지털 소리에 접목시켰다.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 있는 설화는 문화의 원형으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중국식 무협, 서양식 판타지의 기본 세계관과 문법이 있듯 도깨비나 요괴, 귀신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설정을 활용해 한국식 판타지를 쉽게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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