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수사에 달린 대선

양권모 편집인 2021. 10.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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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이할 정도로 끄떡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한복판에서 ‘대장동 게이트’가 터졌는데 막상 이재명 대세론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치적’으로 내세웠던 대장동 개발의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고 있지만, 외려 이재명 후보의 경선 득표율은 올라갔다. 경쟁자인 이낙연 후보는 반사이익조차 거두지 못했다. 묻지마 진영 대결이 대선판을 지배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양권모 편집인

대장동 개발은 “국민 상대로 장사하고 민간업자에게 과도한 부당이득을 안겨준 공공과 토건 사업자의 짬짜미 토건부패 사업”(경실련)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0배의 수익, 100억·1000억 단위의 배당금, 야당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10억·100억 단위로 거론되는 뇌물·로비 자금. 대장동 개발의 ‘돈벼락’과 ‘돈잔치’는 너무 턱없어서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전직 대법관과 검찰총장, 검사장, 특검, 변호사, 언론인, 정치인, 토착 인사, 개발업자, 재벌일가까지 등장 인물도 스펙터클하다. 이들 이권 카르텔이 ‘대장동 게이트’의 구빗길마다 로비·부패 사슬로 엮였을 터이다. 리얼리티는 제로로 느껴지던 영화 <아수라>가 다큐로 여겨질 판이다.

이런 돈벼락과 돈잔치를 가능하게 만든 건 대장동 개발사업이 희대의 특혜 구조로 설계된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뇌물수수와 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희대의 특혜 구조가 설계된 과정에서 비리와 결탁이 있었음이 확연해지고 있다. 당초 대장동 개발의 ‘설계자’를 자임했던 이재명 후보를 흔드는 지점이다.

응당 이재명 후보가 경선 가도에 타격을 받기 십상인데 결과는 반대다. 1위 주자 위기를 진영의 위기로 받아들인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와 대세론을 가속화시켰다. 첨예한 진영 대결 속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우리 후보를 지키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한다. 예서 대장동 게이트의 실체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야권의 1위 주자인 윤석열 후보가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고발 사주 의혹도 마찬가지다. 고발 사주 의혹은 손준성 검사가 고발장 작성과 전달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국정농단이다. ‘장모 변호 문건’ 등 검찰 사유화를 증거하는 자료도 공개되고 있다. 공정과 검찰 독립을 자양 삼은 윤석열 후보의 밑동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안들이다. 한데 ‘윤석열 지지율’은 별 흔들림이 없다. 정책의 빈곤과 철학의 밑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련의 실언과 손바닥 왕(王)자 표기 등 엽기적 행태에도 지지율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1위 주자의 위기를 곧 대선 패배로 연결지은 야권 지지층이 옹위한 결과다.

‘상대방 죽이기’가 지상과제가 되면 극단의 ‘정치 사법화’는 필연이다. 여야의 유력 주자가 모두 피고발인으로 동시에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대장동 개발 특혜와 고발 사주 의혹 모두 치명적 스캔들이다. 정치학자 마틴 쉐프터와 벤저민 긴스버그가 말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만개하게 됐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정당정치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인과 정당의 부패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해 ‘폭로-수사-기소’가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이다.”(<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최장집 교수의 서문 중) 최장집 교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고 경계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정책과 이념을 토대로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당들 간의 경쟁을 통해 작동하는 정치체제다. 한데 이번 대선은 유권자의 선택보다 ‘대장동 개발 특혜’와 ‘고발 사주’에 대한 검경의 수사 결과에 따라 가름될 수도 있게 됐다. 대표와 책임과는 거리가 먼 수사기관의 선택에 대선이 달린 꼴이다.

대선이 5개월여 남았다. 나흘 후면 여당 후보가 확정되고, 한 달 후면 야당 후보가 선출된다. 의혹 수사는 그 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 2007년 대선을 5개월 앞두고 ‘BBK 의혹’ 수사에 착수했던 검찰은 대선을 2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전면 무혐의’를 발표했다. 들끓는 여론에 밀려 이명박 후보가 특검을 수용한 것은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16일 저녁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와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후보들의 비전과 공약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수사 진척 상황이 모든 것을 뒤덮어버리는 선거가 될 수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 대선의 향배를 가늠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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