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마인드]좁아진 세상, 넓어진 내 세계
[경향신문]
일요일 오후, 뉴저지에 사는 친구 캐시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영화 페스티벌 표를 샀는데 심한 교통체증으로 가기 힘드니 대신 가줄 수 없겠냐는 전화였다. 가을을 맞아 맨해튼에는 메트갈라, 뉴욕패션위크 등 각종 행사가 2년 만에 재개되었는데, 아직 대중교통을 불안해하는 많은 사람이 차를 몰고 맨해튼에 오는 바람에 주말이면 코로나19 팬데믹 전보다도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결국 표는 날리게 됐지만 일 년 반 동안 만나지 못한 캐시와 영상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팬데믹 시대가 2년이 되어가며, 이젠 차로 다리만 건너면 되는 뉴저지 친구와의 거리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의 거리 차가 모호해져 간다.
미국 퓨(Pew) 리서치센터의 최근 연구 ‘인터넷과 팬데믹’에 따르면 90%의 미국인들이 인터넷이 중요하거나 필수적이라고 답했고, 53%가 팬데믹 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아닌 지인들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답했다. 또 자신의 삶이 크게 혹은 어느 정도 변했다는 응답은 각각 36%와 47%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18%보다 훨씬 높았다.
팬데믹으로 일과 배움, 교제, 여가생활 등 대부분의 삶이 온라인상에서 더욱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세계는 훅 줄어들었다. 뒤집어 생각하면 내 세계가 지구 끝까지 넓어진 것이기도 하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진료도 가능해 얼마 전 따뜻한 플로리다로 옮긴 주치의와 온라인상으로 만났다. 직장을 옮길 때도 재택근무이다 보니 배우자의 직장 위치나 아이들 학교를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됐다. 신생 비즈니스도 온라인으로 몰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는 작년에 새로 등록된 업체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비즈니스 여행이 50% 이상 줄어들 거라 예상했다. 요즘 온라인으로 듣고 있는 뉴욕시립대 강좌에는 한국, 이탈리아,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접속하는 수강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중 뉴욕의 일레인은 면역력이 약해서 고등학교도 홈스쿨링을 했는데,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온라인화되면서 오히려 사람들과 더 연결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 건강한 타인들도 자신의 처지를 좀 더 이해하는 것 같아 덜 외롭다고 한다.
한국과의 거리도 훌쩍 줄어든 느낌이다. 비록 2년 넘게 한국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넷플릭스 등에 한국 프로그램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니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생각을 쉽게 공유할 수 있어 대화거리도 늘어난다. 방탄소년단 팬인 한국의 친구와 빌보드 차트를 체크하고, 미국 넷플릭스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언제까지 1위를 유지할까 같이 예상하면서 세계는 한없이 좁아진다. 뉴욕타임스의 <오징어 게임> 관련 기사에는 “나는 이 드라마가 미국의 일상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생각됐다”는 냉소적 공감의 댓글이 2위를 차지했다. 작년 한 한국 연예인의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져나가다 뉴욕 카페의 메뉴로 정착한 달고나는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고, 친구 딸은 학교 아이들에게 딱지 접어주느라 바쁘단다.
혼자 있지만 그리 외롭진 않은 인터넷 세상이 세계를 작게 하는 반면, 내 세계는 더욱 넓혀주고 있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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