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한글과 2046년
[경향신문]
BTS가 올해도 유엔에서 연설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서비스 중인 83개국 모두에서 흥행 1위에 오르는 신기록을 세웠다. 말 그대로 ‘개천(開天)’ 이래 처음 있는 쾌거다. K드라마, K팝 등 ‘K문화’의 국제적 경쟁력이 성장 일로에 올랐음이다.
한글의 확산도 반갑다. 아이돌의 해외공연 영상에선 우리말을 곧잘 구사하는 외국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라떼’ 시절, 한글은 외국인이 배우기 어려워하는 언어라는 말을 종종 접했다. 다양한 어미 변화나 ‘파랗다’, ‘퍼렇다’, ‘시퍼렇다’같이 섬세하게 분화된 어휘 등이 외국인에겐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K문화의 보급과 이에 따른 한글의 확산은 이런 견해가 짧은 판단이었음을 말해준다. 공자가 아는 것보다는 좋아함이 낫고 좋아함보다는 즐김이 낫다고 통찰했듯이 지식 차원에선 익히기 어려웠을지라도 좋아함, 즐김의 차원에선 ‘넘사벽’ 따위는 없었음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한글을 좋아한다거나 즐긴다고 할 수 있을까? ‘선플’ 같은 한글과 외래어의 자유로운 조합, ‘현타’ 같은 줄여 쓰기를 통한 신조어 생산, ‘띵작’ 같은 기발하고 유쾌한 언어 놀이 등을 말함이 아니다. 물론 이들은 한글의 녹록지 않은 경쟁력을 일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언어에서도 확장성, 경제성, 유연함 등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우리가 한글을 좋아하고 즐긴 증거라 하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학자로서 지니는 아쉬움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한글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적어도 한글을 ‘국제적 학술어’ 내지 ‘국제적 문화어’로 만들어야 할 듯싶다. 그래서 K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들만이 아니라 한글에 담긴 사유와 감성을, 상상을 접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더욱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이 더욱 풍요로워져야 하고, 속이 깊고 폭이 넓어져야 한다. 가령 동서고금의 인문 자산을 한글로 옮겨 넣고, 이를 시민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자기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랬을 때 한글 반포 600주년이 되는 2046년, 적어도 세종과 집현전 학사의 위패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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