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토요 감독님, '류현진 설명서'는 제대로 읽으셨나요 [시즌 결산]

김재호 2021. 10.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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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천원짜리 이어폰을 사더라도 그속에는 설명서가 딸려나온다. 이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는 사람은 많지않다. 대부분 쓰레기통에 바로 던져버린다.

그러나 연봉 2000만 달러짜리 투수라면? 글짜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야한다. 2021시즌이 끝난 지금, 집에서 가족들과 쉬고 있을 찰리 몬토요 토론토 블루제이스 감독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감독님, 류현진 설명서는 제대로 읽어보셨나요?"

류현진의 2021시즌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토론토가 그를 제대로 관리했는지는 의문이다. 사진= MK스포츠 DB
류현진이 토론토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냈다. 시즌은 두 번째였지만, 162경기 시즌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31경기에 나왔지만 169이닝 소화에 그쳤다. 양적으로 부실했다. 14승으로 개인 최다승 타이를 기록했으나 10패로 역시 개인 최다패 기록도 동시에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4.37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높았다. 이번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39명의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중 여덟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WHIP 1.225 9이닝당 피홈런 1.3개 볼넷 2.0개 탈삼진 7.6개로 사이영상 최종 후보에 들었던 지난 2년(1.045, 0.8/1.5/8.5)과 비교하면 기대에 못미친 것이 사실이었다. 강한 타구 허용 비율 41.6%, 정타 허용 비율 8.5% 등 세부 기록들도 좋은편이 아니었다.

밝은 면을 찾자면, 볼넷 허용 비율 5.3%로 리그 상위 9% 수준을 기록, 제구력을 입증했다. 강하게 맞았지만, 뜬 타구도 많지 않았다. 땅볼 비율이 47.2%로 52.4%에 달했던 지난 시즌보다는 부족했지만 2018년(47%) 수준은 유지했다. 그가 잘던지는 경기에서 땅볼 타구가 많이 나왔던 것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자체가 투수들에게 힘든 지구다. 괜히 '알동 검증'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 이번 시즌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소속으로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중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투수는 단 여덟 명밖에 없었고 4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투수는 14명이었다. 한마디로 보기는 안좋았지만, 그렇다고 끔찍한 수준은 아니었다.

월간 성적을 놓고 보면 4월(평균자책점 2.60)과 5월(2.64), 그리고 7월(2.73)이 좋았고 6월(4.88) 8월(6.21) 9월(7.78)이 아쉬웠다. 시즌 초반 호투하다 지난 시즌 치른 경기수였던 60경기를 넘긴 6월에 슬럼프를 맞이했고, 다시 7월 안정을 찾았으나 8월 이후 극심하게 부진한 흐름이었다.

시즌 막판 슬럼프가 오면서 그에 대한 신뢰는 수직 급락했다. 지역 유력 매체 '토론토 스타'는 "전직 에이스"라는 가시돋힌 표현을 사용했다. 찰리 몬토요 감독도 류현진이 선발로 나오는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우리 팀의 가장 좋은 불펜 네 명이 2이닝씩 소화할 준비가 됐다"는 말을 했다. 보통의 경우 감독들은 그날 선발에 대한 신뢰부터 먼저 드러낸다. 그만큼 류현진을 믿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몬토요 감독은 류현진이 흔들리고 있던 8월, 그를 계속해서 4일 휴식 이후 등판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문제는 토론토 구단, 그리고 몬토요 감독이 류현진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제공했느냐다. 류현진은 8월과 9월, 제대로 숨돌릴 틈이 없었다. 8월 이후 11경기중 6경기에서 4일 휴식 이후 등판을 가져야했다. 8월에는 6경기중 4경기에서 4일을 쉬고 등판했다. 급기야 9월에는 두 경기에서 4 1/3이닝 12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그때서야 목 부상을 이유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한 차례 휴식을 가졌다. 이후 치른 두 경기에서 9 1/3이닝 5실점으로 '그나마'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9월 29일 뉴욕 양키스와 홈경기를 마친 뒤 류현진은 '진작에 휴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가'라는 질문에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들은 그가 적절한 시기 숨돌릴 틈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최고의 162경기 시즌중 하나로 꼽히는 2019년을 떠올려보자. 다저스는 류현진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8월 이후에는 4일 휴식이 한 번도 없었다. 8월초에는 목 부상을 이유로 한 차례 등판을 쉬었다. 그랬음에도 그는 두 경기 연속 7실점을 허용하며 흔들렸고 9월에 결국 한 차례 등판 순서를 걸렀다. 복귀 후 세 경기에서 21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시에도 '쉬는 타이밍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더 늦었다. 피트 워커 투수코치도 "류현진은 올해 팀의 상황 때문에 많은 휴식을 갖지 못했다"며 휴식을 가질 기회가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정말로 기회가 없었을까? 토론토는 시즌 초반 로비 레이의 합류가 지연되고 베테랑 태너 로어크가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끝에 이탈하는 등 악재가 겹치며 로테이션 운영에 애를 먹었다. 류현진은 이때 로테이션이 안정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팀이 시즌 막판까지 그런 상황이었다면 '쉴 기회가 없었다'는 설명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론토의 후반기 로테이션 상황은 훨씬 좋아졌다. 5월말 콜업된 알렉 매노아가 로테이션에 자리잡았고, 레이는 사이영상급 시즌을 보냈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는 올스타 출신 호세 베리오스가 합류했다. 류현진이 잠시 손을 뗀다고 해서 로테이션이 무너질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내년 개막전을 만으로 서른 다섯의 나이에 맞이한다. 그리고 토론토는 앞으로 그에게 2년간 4000만 달러의 돈을 더 줘야한다. 어차피 그는 '200이닝 투수'는 아니다. 그렇다면,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런 투수인지 몰랐다고 항의한다면 할 말이 없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구단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관리를 잘할 수 있는 팀으로 트레이드하라. 이번 겨울은 토론토가 류현진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놔 '의미 있는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 =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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