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상상과 창조는 힘이 세다

- 2021. 10. 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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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놀이로 전 세계 홀린 '오징어 게임'
자율과 실천 통한 콘텐츠 제작이 원동력

세계인이 ‘오징어 게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만들어낸 전에 없던 사례다. 우리 문화콘텐츠가 외부에서 더 사랑받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할증’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킹덤’, ‘D.P.’에 이어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오징어 게임’은 온라인동영상(OTT) 드라마의 시대를 여는 변곡점이 됐다. OTT 드라마는 콘텐츠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중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우리 콘텐츠와 글로벌 플랫폼이 손잡은 결과다. 과감한 투자와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존중, 창작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는 넷플릭스의 정책이 만들어낸 빛나는 결과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예컨대 기존 드라마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징어 게임’은 이야기 시간의 편의성을 최대한 살려냈다. 에피소드마다 러닝타임이 들쑥날쑥한 건 오히려 이야기를 돋보이게 한 독창적 시도다. 이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같은 한국 드라마의 상투적 클리셰를 모두 버리고 오로지 게임이라는 소재에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창조해 나간다.

‘오징어 게임’은 감당할 수 없는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에 갇혀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등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 놀이다. 가장 한국적인 놀이가 21세기의 세계적 문화콘텐츠로 거듭난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런 과정을 통해 게임, 생명, 돈이 연결된 삼각 구조를 만들어낸다. 게임의 결과, 패배한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고 승리한다면 거액을 얻게 된다. 한 번쯤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놀이는 현실의 난제가 돼 돌아온다. 놀이는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게임의 결과, 오직 한 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형벌이 주어진다.

드라마는 이렇게 직조한 이야기를 통해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놀이와 윤리를 상호 결합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극한의 윤리를 시험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묻는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만든 윤리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자본이란 무엇인가.

죽고 살아야만 하는 선택의 문턱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폐쇄된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속에 던져진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를 통해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절망 속에서 극단의 선택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오징어 게임’의 세계는 그저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드라마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을 보여준다.

세계 인이 우리 콘텐츠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오징어 게임’의 드라마트루기(극작술)가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게임의 원리로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은 가장 탁월한 요소다. ‘떠남’, ‘금지’, ‘위반’, ‘투쟁’, ‘협력’, ‘은폐’, ‘발견’, ‘귀환’ 등 스토리텔링의 다양한 요소와 기능을 꼼꼼히 엮어낸 솜씨도 돋보인다.

콘텐츠 창작의 원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고민,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부터 콘텐츠를 창조하려는 노력, 그러나 콘텐츠의 국적을 강조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하려는 글로벌한 선택이 ‘오징어 게임’ 열풍을 몰고 왔다. 우리 콘텐츠의 미래 또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 콘텐츠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3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벼왔다. 그 사이 콘텐츠는 시대를 이끌어갈 핵심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콘텐츠 제작과정에는 적잖은 자본이 필요하고, 시장의 성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양한 개입이 이뤄진다. 그러나 콘텐츠의 생명력은 결국 자율적 정신과 실천을 통해 창조된다. 자율과 상상, 창조는 우리가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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