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문명서 생태문명으로 전환은 필연..삶과 의식 싹 바꿔야"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도재기 논설위원 2021. 10. 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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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지구와사람 공동대표

[경향신문]

강금실 지구와사람 공동대표는 지난 달 30일 서울 삼청로 지구와사람의 사무실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유재’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존재들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대안적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은 뜻있는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강 공동대표(64)는 판사·로펌 대표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0여년 전부터 인간과 지구·비인간 생명 존재의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한 생태문명을 공부하고 있다. 학술연구 모임 ‘생명문화포럼’ ‘지구법학회’ ‘생태대연구회’ 등을 꾸렸고, 2015년부터 지식공동체 ‘지구와사람’을 통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학술·교육·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법무법인 원의 ESG센터장, 강원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사람들이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고 근본지식을 쌓아가는 활동의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게 꿈이다. 저서로 <생명의 정치> <오래된 영혼> <서른의 당신에게>와 <지구를 위한 법학>(공저) 등이 있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의 지속 가능한
공존 위해서 활동 터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
ESG 경영 등으로 전환은 이미 시작
환경권 패러다임 넘어 지구법 패러다임으로 가야
탄소중립은 수량적 이산화탄소 감축이
목표 아닌데…철학과 실천로드맵 불명확 아쉬워
이재명 후보 후원회장 맡은 건 정치활동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자유 차원으로 봐줬으면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를 넘더니 급기야 기후재앙으로 순식간에 밀어닥쳤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산업문명의 한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지구 등 비인간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추구하는 대안적 생태문명이 주목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나 기업에서도 탄소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문명의 거대한 전환을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0여년째 이런 흐름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이다.

강 변호사에게는 직함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지구와사람 공동대표, 법무법인 원의 ESG센터장이다. 두 직함에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공통의 지향이 있다. 지구와사람이 전환의 논리를 추구하는 학술적 지식공동체 역할을 한다면 ESG센터는 그 방안의 제안·실현을 모색한다. 밖으로 크게 드러내진 않으면서 내실있게 공부하고 문명 전환의 실천 토대를 쌓아 나가고 있다. 대안적 문명은 개인의 일상 속 작은 실천이 기본이지만, 결국 법과 제도적 장치로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최근 강 변호사가 <지구를 위한 변론-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를 펴냈다.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경험, 사유의 결정체인 셈이다. 지구와사람의 사무실이자 한옥 복합문화공간 ‘유재’에서 만난 강 변호사는 “기후위기, 코로나19 등으로 생태문명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실천적 움직임도 있다”며 이 활동의 미래를 낙관했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 존재들과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기꺼이 삶과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라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으로 유명한, ‘다 쓰지 않고 남김’이라는 의미가 담긴 ‘유재(留齋)’라는 현판이 지구와사람의 정신과 썩 어울렸다.

- 생태문명 연구자·활동가로서 코로나19 사태가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이미 1920년대 이후 지구의 기온 상승과 더불어 전염병 전파가 정비례해 급증해왔다. 최근 대중적으로도 기후위기, 지구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음을 느낀다.”

- 정치를 그만두고 생태문명 공부와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나’를 여전히 알기가 어렵지만, 어릴 때부터 ‘살아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같은 질문의 연장선 속에서 공부를 했다. 판사, 법무부 장관 경험은 특별한 혜택이었다. 인간의 정체성과 명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정치·사회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풀어보고자 계속 길을 찾아다니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2008년 신부님의 추천으로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 진학했다. 선물처럼 만나게 된 선생님들과 선배·동료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해왔다. 저는 정치활동 영역에서 공적을 쌓기보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만나고 배우고 가르치고 근본지식을 쌓아가는 활동의 터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 <지구를 위한 변론>을 펴낸 취지는 무엇인가.

“2012년 산업문명의 대안으로 생명 중심의 생태학적 관점을 소개하는 <생명의 정치>를 출간했다. 그에 비해 새 책 <지구를 위한 변론>은 질적·양적 변화가 급속하게 초래한 지구의 위기상황을 보여주면서 그동안 생태문명 논의의 역사적 흐름과 국제적인 대안, 실천 사례 등을 짚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가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공동체, 즉 전 지구적 사고와 실천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지구법(지구법학)도 상세히 소개했다. 지구법은 인간 중심의 근대법 체계를 넘어 지구상의 동식물과 강·나무 등 자연의 모든 비인간 생명 존재에도 법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 생태문명 전환은 기존의 사고틀이나 산업구조 등의 엄청난 변화를 전제로 해야 가능한데.

“그렇다. 기후위기 등으로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국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나 탄소중립, ESG 경영, 지구법 등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이나 지구를 배제한 채 인간 중심으로 문명을 이끌어왔는데 가장 큰 결함이 지구의 배제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환경·경제·사회 등 여러 범주의 가치를 통합하고 지구공동체라는 큰 틀에서의 사유, 의식과 사고틀의 전환이 필요하다. 종전과 다른 새롭고 어려운 방식이 될 텐데,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도 요구한다. 이는 기술 혁신과 연대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사실 이 전환은 이미 1972년 유엔 스톡홀름회의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50년 묵은 과제를 이제 막 풀기 시작한 것으로, 전환은 필연이다.”

- “지구법은 대안적 세계관·시스템을 적극 제안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데, 지구법학회를 결성해 활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1992년 리우선언은 지구를 ‘우리 공동의 집’이라며 지구와 인간의 상호의존성, 자연과의 조화를 지속 가능 발전의 정신으로 표방했다. 이 선언의 가치 실현을 위한 게 지구법이고, 그 핵심 원리는 지구상의 비인간 존재에게도 ‘존재할 권리, 거주(서식)할 권리, 진화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스톡홀름회의 이후 시작된 환경권 패러다임이 지구법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환경 패러다임이 인간 행위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구의 한계를 인식하는 지구법 패러다임은 지구 보호에 초점을 둔다. 인간의 권리 보호를 기본 토대로 하는 근대법 체계로는 현재 전 지구적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다. 유엔 등에서는 이미 지구법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5년 결성된 지구법학회가 작년에 ‘지구를 위한 법학’ 관련 번역서들을 펴냈다.”

- 국제적인 사례와 추세는 어떤가.

“세계 곳곳에서 헌법, 지자체 조례 등으로 지구법 취지가 실천되고 있다. 뉴질랜드 의회는 2017년 황가누이강에 법인격(legal person)을 부여해 세계 최초로 강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30여개 지역공동체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지방조례 등이 나왔다. 헌법에 자연의 권리조항을 명시한 에콰도르, 강과 빙하 등에 법인격을 부여한 인도 판결 등도 있다. 유럽의회도 자연의 권리 인정을 다룬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그만큼 현 상황을 위기로 여기고 제도와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 국내 상황은 어떤가.

“최근 각계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국제적인 추세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다. 최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심의·의결을 앞두고 있다. 민법 개정안은 지구법학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사람들의 관심이 일정한 흐름을 형성해 퍼지면서 설득력을 가지게 되면 사회적 합의하에 새로운 제도와 법이 출현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국회의 입법에 앞서 지방자치단체가 구체적인 사건과 결부시켜 조례를 통해 해결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이를테면 최근 경기도와 남양주시가 계곡을 깨끗하게 정비했는데, 한 발 더 나아가 계곡의 권리를 인정하는 조례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가치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지구법 정신과 바이오크라시(Biocracy)를 실천하는 것이다.”

- 생태학살(echocide·에코사이드)을 국제범죄에 포함시키는 제안도 있다고 들었다.

“여러 법률가들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에코사이드의 국제범죄 규정화를 위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오는 12월 채택 여부가 논의된다. 생태학살 문제는 앞으로 더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 근래 주목받는 ‘인류세’ 논의에서 더 나아가 ‘생태대’ 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인류세가 인간 행위로 인한 지구시스템의 변형·파괴를 지적한다면, 생태대는 위기를 지적하되 지구와 인간이 상호증진적으로 공존할 경로를 찾는다. 저명한 생태신학자·문화사학자로 생태대 선구자인 토머스 베리는 정부와 기업·종교 등 각 주체의 변화와 제도·시스템 개선을 촉구하며 특히 지구적합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강조했다.”

- 기업계에 ESG 경영 붐이 일고 있다.

“ESG 경영은 시대적 과제이자 수출 기업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진작 준비해온 유럽 등과 상대해야 하니 우리 기업들이 쫓아가기 바쁜 상황이다. 그만큼 ESG 경영 전환 과정에서 초기 비용 부담이 크며 특히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어렵다. 전체적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될 텐데 ‘정의로운 전환’ ‘공정한 전환’이 중요하다. 산업구조 개편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모든 주체들 간의 원활한 소통과 연대의식 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 정책도 필요하다.”

- 비무장지대(DMZ)를 지구법적 관점에서 보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환경·평화·발전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7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겨 자생적으로 생명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자연공간·생명공동체인 DMZ의 접근 방식을 DMZ 중심, 즉 DMZ 점유자인 동식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DMZ는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미래지향적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구와사람에서는 관련 법안을 연구 중이다. DMZ는 20세기 근대적 성장과 전쟁의 흔적이 21세기 지구 중심의 생태평화 지역이자 인간과 국가 간 평화뿐 아니라 인간과 지구 자연이 공존하는 지구 평화를 기록하는 세계 유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고, 2050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파리협약에서 주어진 정부 과제에 속도를 맞추고 실행해 왔다고 본다. 작년에 대통령이 탄소중립선언을 했고, 이번 법제화도 세계적 추세에 보조를 맞춘 편이다. 탄소중립위원회도 국회의 법안 통과가 늦어지자 정부가 앞서나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지를 평가해줘야 한다고 본다. 다만 목표 달성을 위한 감축과 적응, 전환의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과제는 현실적으로 차기 정부에 넘겨졌다고 본다.”

- 정부와 시민사회, 재계의 탄소중립 의지를 어떻게 보나.

“모두 의지는 충분히 갖췄지만 탄소중립의 철학과 실천 로드맵이 아직 명확하지 못하다. 탄소중립은 단순히 수량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산업문명의 패러다임 전환, 삶의 변화가 핵심이다. 이 점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장기적으로 전환 목표와 가치가 분명하고 널리 확산돼야 산업구조 개편·에너지 전환 등의 효율적 실천이 가능하다. 산업구조 개편은 에너지 전환과 함께 가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나 탈석탄·원전 등을 둘러싼 정부의 자세한 설명을 통한 설득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법·제도로 앞서나간다.”

- 향후 연구·활동 계획은.

“지구와사람을 중심으로 생태적 세계관과 제도에 관한 논의들을 대중화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강좌 등을 지금보다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외 관련 학술·활동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한 광범위한 네트워크 구축, 다양한 예술문화활동 등도 준비 중이다. 최근 지구 아이(EARTH EYE)라는 플랫폼도 시작했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후원회장인데, 정치활동을 재개한 건가.

“(웃음) 진짜 정치활동을 할 거면 캠프에 합류했을 것이다. 정치활동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 자유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 출신으로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 젊은 여성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나를 괴롭히는 지점에서 깨달은 것은 약자와 피해자가 새로운 사상과 실천으로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주체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 것 같지만 아니다. 당장의 이해관계, 생활에 매몰되기보다 삶과 세계의 주재자로서 더 크고 더 깊게 세상을 대면하고 보편적으로 사유하며 또 실행하기를 권한다. 지금 우리는 내부 문제와 전 지구적 과제를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시대를 맞지 않았는가.”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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