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복잡계 현상 파헤친 사고전환, 기후변화 연구 급물살로 이어졌다" 노벨물리학상 업적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지구의 복잡한 기후와 무질서한 물질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넓힌 물리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 덕분에 복잡한 기후 변화를 분석하는 현대적 기후 모델이 만들어졌고 혼돈과 무질서와 같은 복잡한 물리 세계의 규칙에 대한 인류의 이해가 확장됐다는 평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클라우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차대 교수를 선정했다.
마나베 교수와 하셀만 연구원은 지구 기후의 물리적 모델링, 가변성 정량화, 안정적인 지구 온난화 예측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파리시 교수는 원자에서 행성에 이르는 물리적 시스템의 무질서와 변동의 상호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수상에 대해 단정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연구 분야에 대해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제시한 업적과 이를 토대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예측하는 모델을 세워 심각성을 알리는 데 공헌한 연구자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했다.
박형규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5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2021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스핀 글라스는 무질서한 물질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개념인데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며 “파리시 교수가 스핀 글라스는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스핀 글라스란 비자성체에 자성을 띤 불순물을 섞었을 때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는 시스템을 뜻한다. 박 교수는 굉장히 뜨거운 유리를 액체로 만들고 갑자기 찬물에 집어넣으면 안에 있는 유리 분자들이 갑자기 너무 차가워지면서 제자리를 못 잡고 아무 때나 가서 굳은 현상을 한 예로 들었다.
박 교수는 “최근에는 이를 스핀 모델이라는 스핀의 업다운만 이용한 것으로 모델링을 해서 문제를 풀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며 “파리시 교수는 스핀들이 부근 스핀과만 상호작용하는게 아니라 전체가 다 한다는 것을 가정해 정확히 수학적으로 문제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풀었더니 아주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와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회 현상과 같은 데도 적용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사람이 셋인데 A는 B를 좋아하고 B는 C를 좋아하는데 A와 C가 싫어하는 경우 함께 모아 놓으면 곤란한 경우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응용해 요즘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이 모여져 있을 때 어떤 구조가 생기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기훈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파리시 교수는 복잡계 시스템에서 스핀을 이용해 초기 연구를 했는데 이후 복잡계 문제가 기후 문제 뿐 아니라 생물학이나 뉴로사이언스, 머신러닝까지 연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병남 한국에너지공과대학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물질들은 서로 경쟁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데 이런 물리적인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파리시 교수가 여러 이론을 제창했다"며 "노벨위원회는 물리적 시스템에 대해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복잡계에서의 어떤 확률적인 방법을 사용해 예측하는 방법으로 사고의 전환을 이뤄낸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고의 전환은 추후 기후변화 등 자연과학 여러 분야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나베 교수와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던 1970~1980년대 당시 인위적인 요소가 기후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을 처음으로 세우고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알렸다. 마나베 교수와 동료들은 1969년 최초의 현대적 개념의 기후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지구의 복잡한 기후 변화 문제를 파헤치는 연구가 급물살을 타는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종성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마나베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던 1980년대 초기부터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며 "가령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연평균기온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등 실질적으로 기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최초로 시뮬레이션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기후변화는 복잡한 수식 기반으로 된 기후모델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예측하는 것인데 마나베 교수는 사실상 이런 기후모델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며 "대기의 구름이 생겼을 때 어떻게 에너지가 변하는지 지표 뿐 아니라 대기와 성층권까지 어떻게 기온이 변하는 등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것이 대단한 업적인게 그때만 하더라도 관측 자료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오로지 수학적 이론 기반으로 물리적 특성 최대한 활용해서 추정했기 때문"이라며 "마나베 교수가 당시 이산화탄소에 대해 추정한 게 지금 연구결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마나베 교수와 함께 기후변화 연구 성과로 공동 수상한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 분야에서 탐지와 원인을 규명하는 방법론을 만든 개척자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1979년, 자연적인 요인 외에도 인위적인 요인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을 처음으로 세운 사람"이라며 "당시에는 그 인위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모르니 어떤 힘에 대한 반응, 내부 변동성 등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의 패턴을 지문처럼 생각해 자연적인 패턴과 인위적인 패턴으로 나눠 생각하는 '지문(핑거프린팅) 방법론'을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민 교수는 "당시에는 간단한 수학 방정식을 이용한 연구 결과였지만 하셀만 연구원의 이런 연구 성과를 토대로 후대 기후학자들이 방법론을 더 추가 개발하고 발전시켜서 현재처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간 기후학자들이 증거를 많이 찾은 덕분에 최근 기후변화보고서 등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에 대한 심각성도 알려졌다.
손 교수는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가 시작된 초기에는 대기가 주로 영향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양이 영향을 받는다는 해양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에 공헌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구과학이 순수 과학으로 여전히 인정을 많이 못 받고 있다"며 "과거 기후 분야에서 오존홀 연구한 사람이 노벨화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유체역학 분야에서도 수상자가 나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번 수상자 결과가 전 세계 대기과학과 해양학, 지구과학 연구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많이 될 것"이라며 "예상치 못한 결과인 만큼 노벨위원회가 지구과학을 인정해준거 같아 몹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조승한 기자 zzunga@donga.com,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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