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상품 통해 결혼한다면".. 발칙하게 풀어낸 사랑 이야기
어떤 가능성·미래 보고 가입하는 보험
이야기·소설적으로 매력적이라 생각
재난·재건 다룬 소설이라 개인적 생각
안나 통해 아주 조금씩 이야기가 이동
전작을 읽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한줄이라도 독자 일렁이게 하면 근사
오래전, 그는 ‘결혼보험’을 생각했다. 계약서나 각서, 보험 약관집, 책 속의 책 등의 형식에 흥미‘를 갖고 있던 그였다. 왜냐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조항이나 조문으로 이뤄진 보험 약관집 등에는 그 시대의 삶이나 일상 등이 절묘하게 담겨 있으니까.
도서관에서 런웨이하는 모습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는 여행사 직원 출신 안나는 어느 날 동네 도서관에서 책으로 둔갑한 결혼보험 약관집을 발견한다. 안나는 약관집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액에 팔린다는 걸 대학 친구 유리에게 알려준 뒤 홀연히 사라진다.
보험사 직원 출신인 친구 유리는 어쩔 수 없이 약관집과 함께 안나를 찾아 나선다. 안나의 남편 정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리는 약관집을 찾은 뒤 보험사 언더라이터 조를 만나면서 애상치 못한 진실을 대면하게 되는데.
“소설을 시작하게 된 지점은 도서관에서 걸어가는 인물의 이미지, 책들이 작은 사이즈로 꽂혀 있을 때 그 앞을 걸어가는 이미지였다. 안나라는 인물이 등장해 책 사이를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게 된다면, 다시 드물게 걷게 된다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이번 작품에선 조용해야 하는 도서관과 런웨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붙여 상상했다.”
―안나와 유리, ‘조’와 정우라는 흥미로운 네 인물이 등장한다.
“저는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고, 대체로 만들어간다. 제 모습도 조금씩 들어가고. 유리는 안나와 다르게 차분하게 진실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조’라는 인물은 안나의 생활을 알고 싶어서 자격이 되지 않는 정우의 보험을 가입시켜준, 문제적 인물이다. 정우는 안나가 사랑하는 인물 정도로만 나오고 면모가 잘 나오지 않는다. 조가 심사하는 과정에서 서류상으로밖에 알 수 없고, 뒤늦게 안나의 추억 속에서 드문드문 알게 되는 사람이다.”
―사건 전개의 핵심은 결국 결혼보험 약관집인데, 어떤 의미인지.
“‘밤의 여행자들’이 재난을 다룬 소설이라면, ‘도서관 런웨이’는 재난과 재건을 다룬 소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안나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휩쓸리고 즐겨하던 도서관 런웨이를 멈추게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말을 반복해 떠올리면서 남편과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3인칭 이야기에 닿게 되니까. 소설 시작 부분에서는 안나가 걸었다면, 끝부분에선 안나의 이야기가 걷는 셈이다. 안나를 떠나서 아주 조금씩 이야기가 이동하는 것이다. 저는 이것들이 무너진 것을 하나하나 재건하고자 애쓰는 몸짓으로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들은 사람보다 먼저 일어나서 한 보 앞으로 걸어 나가기도 하니까. 이를 통해 자기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추슬러 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 시기를 통과하는 사람의 모습을. 걸어간다는 자체가, 속도건 보폭이건 상관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 안에는 모두 세 개의 이야기가 함께 존재하게 된다. 하나는 우리가 읽고 있는 ‘도서관 런웨이’가, 다른 하나는 스토리텔링 효과로 도서관에 들어가 버린 결혼보험 약관집이, 마지막은 이제 겨우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한, 안나가 친구 유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저는 안나가 친구 유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소 껄끄러웠던 두 사람이 이제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계가 된 것만으로도 그 둘 다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아서요.”
“조금 욕심을 내자면, ‘전작을 읽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어느 집 책장에 넓게 한 줄, 혹은 두 줄을 꽉꽉 채우는 작품을 쓰고 싶다. 그렇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제 소설 중에 단 한 권, 혹은 단 한 페이지, 단 한 줄이라도 어느 독자의 마음속을 일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근사하지 않은가, 하고. 사랑은 그런 찰나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추리소설로 분류돼 대거상까지 받은 마당에, 앞으로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건 아닐까.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물었더니,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EBS 라디오를 켜면 들리는 그 목소리가. “사실 어떤 것이 본격적인 추리소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제 소설 안에서 추리소설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관심이 저로서도 재미있게 다가오고요. 전 제가 쓰고 싶은 방향으로 계속 쓸 뿐이지만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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