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노벨상]전쟁과 탄압 피한 이민자들, '기회의 땅'에서 노벨상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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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줄리어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모두 이민자 가족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교수는 지난해 카블리 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자신의 일대기를 짧은 자서전 형태로 공개했다.
브루클린 해변은 동유럽 이민자들을 위한 착륙장 역할을 했고, 이후 줄리어스 교수 가족은 죽 뉴욕에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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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줄리어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모두 이민자 가족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교수는 지난해 카블리 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자신의 일대기를 짧은 자서전 형태로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파타푸티언 교수는 1967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작가이자 회계사였던 아버지에게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8살부터 레바논 내전을 겪었다. 레바논 내전은 15년 간 수십 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아르메니아인의 후손이다. 레바논 인구의 4%밖에 되지 않는 아르메니아계는 내전에서 중립으로 여겨졌으나 전쟁이 길어지자 탈출이 이어졌다. 그가 다니던 아르메니아인 학교는 신입생이 5명으로 줄어들자 결국 문을 닫았다. 그는 엄격한 교육을 자랑했던 다문화 사립학교로 옮기게 됐는데 그곳에서 늦게 수학과 과학의 재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 농구와 탁구, 지중해 여행을 유일한 낙으로 삼던 그는 베이루트 아메리칸대로 의예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내전이 심해지면서 징병의 두려움에 떤 끝에 1986년 18세의 나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피자를 배달하고 아르메니아 신문에 주간 운세를 쓰는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의대 지원을 준비하던 중 추천서를 받기 위해 연구소에 들어간 이후 기초연구에 푹 빠지게 됐다.
줄리어스 교수도 이민자 3세 출신이다. 조부모는 러시아 제국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탈출한 동유럽 이민자 중 하나였다. 브루클린 해변은 동유럽 이민자들을 위한 착륙장 역할을 했고, 이후 줄리어스 교수 가족은 죽 뉴욕에 자랐다. 줄리어스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모두에게 개방된 국경과 기회라는 미국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가족이 함께 어울려 살던 그는 어린 시절은 마지못해 학교를 다닌다고 할 정도로 놀기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였다가 물리 교사가 된 허브 아이작슨 선생의 영향을 받아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줄리어스 교수는 “아이작슨 씨는 아이디어로 학생들에게 도전했고 열정적인 참여를 이끌던 선생이었다”며 “과학이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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