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 디지털로 공연하고 수익 나눕시다"

임석규 2021. 10. 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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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인터뷰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역시 ‘대학로 출신’답다. 찰진 입담으로 술술 풀어내는 얘기를 듣다 보면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된다. 근엄한 표정의 공공기관장보다 살짝 망가지는 역할의 배우가 어울릴 성싶기도 하다.

대학 연극반과 마당극으로 공연 예술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한국 연극계에 창작극 활성화를 주도한 극단 연우무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영화 <결혼 이야기>(1992), <미스터 맘마>(1992),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의 프로듀서를 맡거나 제작하며 199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뮤지컬에도 발을 들여 2009년께 투자한 창작 뮤지컬 <구름빵>이 관람객 40만명을 모을 정도로 흥행했고, 서울시뮤지컬단장도 지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그런 그가 예술의전당 사장직을 ‘40년 예술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표현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3년 임기 중 2년6개월을 채운 유인택 사장을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공연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드 코로나 모드”라고 했다.

“내가 대학은 약대를 나왔어요. 드디어 처음으로 전공을 발휘할 기회가 오더군요.(웃음)”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장이 폐쇄됐고 예술인들은 무대를 잃었다. 그는 공연·전시판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봤다. “비말 감염은 마스크 쓰면 예방이 가능합니다. 공연장 관객은 앞만 볼 뿐 말은 안 하잖아요.” 접촉 감염 방지를 위해 관객이 문고리를 잡을 일 없도록 문을 모두 열어뒀다. 티켓도 손으로 찢지 않고 눈으로만 확인하도록 했다. 논리와 대책을 제시하며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역당국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 4월부터 공연장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 최초의 공연 재개였다”고 유 사장은 자부한다. “공연장 감염은 거의 없습니다. 여태껏 소극장 감염 1건이 전부예요. 마스크 쓰고 환기 잘하면 아무 문제 없어요.”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어려운 민간 예술단체 지원 확대도 그가 맞닥뜨린 중요한 숙제였다. “작년 손실이 140억원인데, 90억원을 은행에서 차입해 직원들 봉급 줬어요. 예술의전당이 이 정도인데 민간 공연장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민간 예술인들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예술의전당 재정자립도를 낮춰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관 장사’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수익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민간 예술단체에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려면 예술의전당이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국고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비영리, 순수·기초예술은 공공의 지원 없이는 매우 어렵습니다. 젊은 예술인들한테도 더 많은 기회를 줘야지요.” 그는 국고만 바라볼 수 없어 민간 재원조달에도 동분서주했다. 제작자 출신인 그에게 재원조달은 ‘주특기’ 아닌가. 과거 경험을 살려 공연 펀드를 조성해 무대에 올린 연극 <여자만세>는 수익까지 창출해냈다. 이밖에 재난지원금 기부운동, 예술기부 캠페인을 벌였고, 기업이 직원들 문화·복지 혜택으로 제공할 수 있는 무기명법인회원권도 도입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디지털 기술과 예술이 만나야 하고, 그 방식이 진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예술은 소멸할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가 촉진한 비대면·온라인 공연 활성화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최대 화두가 될 겁니다.” 돈과 기술이 필요한 비대면·온라인 공연 환경 구축을 위해 플랫폼 기업들이 일정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은 어차피 좋은 콘텐츠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공연예술을 디지털로 구축하는 데 지원하고 수익이 나면 공유하는 구조로 가면 어떨까 합니다.” 이를테면, 1억원짜리 무대를 공연영화(스테이지무비)로 만들려면 2억원이 드는데, 민간 예술단체는 할 수 없으니 네이버나 카카오가 투자하고 수익을 나누자는 거다. “차제에 플랫폼 기업들이 전통적 대기업과 다른 차원에서 예술 발전에 기여하는 흐름이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1%의 예술’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그의 지론은 창작공연, 창작예술에 대한 중점 지원론으로 이어진다. “우리 영화가 세계를 휩쓸게 된 건 스크린쿼터제로 한국 영화 점유율을 높인 데 따른 창작 활성화에서 시작됐어요. 오페라나 무용, 발레도 국내 창작 작품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말로 우리 얘기를 해야 관객이 늘어납니다.” 고액 개런티의 스타 예술가들만 고집해선 안 되고 더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내놓아야 한다는 견해다. “상위 1%의 최정상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젊고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더 많이 무대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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