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넷플릭스는 불가능할까

한겨레 2021. 10. 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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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이원재ㅣLAB2050 대표

20년 전 넷플릭스는 디브이디(DVD)를 우편 봉투에 넣어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미국 우체국(USPS)의 왕복우편서비스를 이용했다. 우표를 붙이지 않고 매우 저렴한 가격에 디브이디를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우체국은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이 서비스를 유지했는데, 고객은 사실상 넷플릭스 한곳이었다. 국가가 밀어주며 키운 셈이다.

우편배달 서비스로 넷플릭스는 수익률 50%를 내며 경쟁 비디오 대여점들을 무너뜨렸다. 여기서 생긴 여유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일찍 영상스트리밍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를 주름잡는 데까지 왔다.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도, 다른 미국 드라마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제작비를 받고 저작권을 통째로 넘긴 상태라는 소식을 접하고 떠올린 옛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신망 사용료도 내지 않고 있다고 하니 더 부아가 치밀었다. 생사를 건 게임은 한국 사람들이 했는데, 제작비를 제외한 수익은 플랫폼 사업자인 넷플릭스가 차지하게 됐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따지고 보면 유튜브도 비슷하다. 좋은 콘텐츠를 올려놓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 누구든지 광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용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밤새워 만든 좋은 콘텐츠들이 유튜브 본사인 구글의 매출을 늘리는 데 무료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낸 시청료와 우리나라 기업이 낸 광고료로 만든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영상이 유튜브를 떠받쳐 키우고 있다.

사실 돈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유튜브는 이미 뉴스미디어 기능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와 선정적 폭력물이 넘쳐나도, 우리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묻지 마 폭행을 생중계하고 사생활을 마구 파헤치는 영상을 걸어놓아도 방치된다. 자녀 앞에 노출되는 넷플릭스 영상의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부모도 알 수 없다.

기업 쪽에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탓’이라거나 ‘세부 정책은 공개할 수 없다’는 해명만 늘어놓는다.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부끄러워서 내놓을 수 없는 이런 말에도, 사회적 대응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규범을 외국 기업의 알고리즘에 맡겨둔 셈이다.

이 정도까지 되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왜 우리나라 기업이 운영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없을까?

유튜브나 구글이나 넷플릭스나, 실상 그들이 이 자리에 서게 만든 가장 큰 뒷심은 자본력에서 나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액의 투자가 이뤄지는 금융시장의 마법 덕에 그들의 전략이 가능했다. 공짜 또는 저가 서비스로 소비자를 잡아둔 뒤, 적절한 투자로 콘텐츠 공급자들을 모아 의존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이런 물량공세는 물론 시장을 장악한 뒤 얻어낼 독점이익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자금이 없을까? 충분한 것 같아 보인다. 가계부채가 분기당 40조원 이상씩 늘어나서, 벌써 1800조원이 넘는다. 부동산 구매에 주로 사용되었을 돈이다.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혁신을 일으키게 해야 할 돈이 땅에 묻혀 있는 셈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을 환수한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도 가능할 것 같다.

미디어 콘텐츠 분야 정책 논의는 언론사를 규제하거나 콘텐츠 산업에 투자하거나, 좀더 나가더라도 외국 기업한테 세금을 제대로 걷는 데서 그친다. 좀더 시야를 넓혀, 글로벌 콘텐츠 생태계에 어떻게 참여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플랫폼 전략이 이런 콘텐츠 산업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개별 언론사나 콘텐츠 기업이 홀로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전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카카오톡)와 모든 사람이 자료를 찾는 포털 서비스(네이버)를 국산으로 보유한 드문 나라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다. <기생충>, ‘비티에스’(BTS), <오징어 게임>까지 몇가지 사례만 떠올려도 잠재력이 확인된다.

기술 기업에는 국경이 없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국적이 갖는 의미도 커지고 있다. 돌아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개발연대 국가의 뒷받침으로, 네이버와 카카오는 닷컴버블 시대 국가가 마련한 투자환경 위에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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