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권순일 전 대법관의 판결 의혹

김충제 2021. 10. 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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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은 연방대법원을 가장 신뢰하는 국가기관으로 꼽으며 9명의 미국 연방대법관을 '9인의 현자(賢者)'라고 부른다.

우리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할을 대법원과 헌재가 나누어 맡고 있어 위상이 다르긴 해도 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로 부르는 건 공통적이다.

김씨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 지사 사건 심리 전후 8차례나 권 대법관을 방문했다.

이 지사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다음 날, 대법원 무죄판결 다음 날도 김씨는 권 대법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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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은 연방대법원을 가장 신뢰하는 국가기관으로 꼽으며 9명의 미국 연방대법관을 '9인의 현자(賢者)'라고 부른다. 우리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할을 대법원과 헌재가 나누어 맡고 있어 위상이 다르긴 해도 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로 부르는 건 공통적이다. '정의' 자체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현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국민이 대법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 재벌 회장, 현직 도지사 등뿐만 아니라 국민의 운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쥔 최고 법관들을 존중하는 걸 당연한 도리로 아는 게 우리들이다. 그런데 그런 대법관 방을 '제 집 드나들 듯' 무시로 출입한 사람이 있다. 대법원 이발소를 가거나 동료 기자들을 만나면서 권순일 대법관실을 행선지로 기재했다는 김만배씨가 주인공이다.

김씨는 성남 대장동 개발을 주도한 화천대유의 대주주로 성남 시장이던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연관성을 의심 받는 인물이다. 김씨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 지사 사건 심리 전후 8차례나 권 대법관을 방문했다. 이 지사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다음 날, 대법원 무죄판결 다음 날도 김씨는 권 대법관을 찾았다. 당시에도 무죄판결을 권 대법관이 주도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아무리 형님 동생이라 해도 그렇게 자주 만나 무슨 대화를 했을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퇴임 후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됐다. 대법관 출신이 월 1500만원을 보고 자산관리회사에 취업한 이유가 단지 김씨와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재판거래, 사후수뢰를 의심하는 건 마귀가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의 합리적 판단이다.

권 전 대법관은 "항소심에서 쟁점이 됐던 사항만 요약된 보고서를 봤을 뿐, 대장동 개발 문제가 이 사건에 포함돼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 지사 사건(2019도13328) 판결문에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 제목하에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검사사칭 전과 및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업적 관련 각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원심(항소심)이 그대로 유지하였다"라는 대목이 분명히 박혀 있다. 주된 쟁점은 아니었지만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도 검토됐고, 대법원이 항소심 무죄판결을 추인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장동을 몰랐다는 변명은 구차함을 더할 뿐이다. 대선 후보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건에서 자신이 서명한 판결문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시민단체 등의 고발에 따라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사법부 신뢰에 더 큰 타격을 가할 게 분명하다. 합의 과정 비공개 운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모든 인적·물적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거래 의혹 자체가 법원의 치욕이며, 이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 사상 최악의 추문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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