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갑작스런 유화 제스처 배경은?
백신 지원받아 北中무역 재개 의도 해석도
"대선정국 영향 미치려는 계산도 깔려 있어"
북한이 최근 전향적인 태도로 우리 정부에 유화제스쳐를 보내며 급기야 지난 4일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배경에는 북한의 식량난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북제재 장기화와 지난해 수해,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 등 '3중고'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이반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한국에 손을 내민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현 경제 상황이 과거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까지는 아니어도 김정은 집권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맞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민간 연구기관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4일(현지시간) 공개한 '2021년 가을 북한의 농업상황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7~8월까지 농작물 수확량은 평년에 미치지 못했다. CSIS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2~3달치에 해당하는 86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별명령으로 군량미를 풀어 주민들에게 지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지난해 발생한 막대한 수해에 이어 올해 역시 북중교역 중단으로 금년 상반기 농사에 필수적인 비료와 비닐박막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연구위원은 "식량·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체제결속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남측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의 대화 요구에 응한다면 북한은 식량과 더불어 코로자19백신을 가장 우선적으로 요청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이후 현재까지 거의 2년간 코로나19방역을 이유로 북중 국경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국경 봉쇄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 당국의 주민 대상 교육자료를 보면 압록강, 두만강 등 국경지역에서 세수와 빨래만 해도 처벌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식량을 지원받아 급한 불을 끄고, 백신을 주민들에게 공급해 대중 무역을 재개하는 방향으로 경제난과 체제위기에 대응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의 유화적 행동이 남측 대선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10월에 통신연락망을 복원하겠다고 해놓고 지난 4일 단행한 것에 대해 "10.4 남북공동선언 14주년에 날짜를 맞춘 것"이라며 최근 대화의지를 보인 것도 "북한이 이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와 같은 정치적 계산을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 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대화를 성사시켰던 당시와 지금은 너무도 유사하다"며 "당시에도 북측은 남북대화를 통해 진보정권의 계승에 도움이 되면 좋고, 보수정권이 들어선다해도 남북공동선언의 결과를 쉽게 갈아엎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전향적인 대화 제스처가 남측 대선 정국을 북핵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다른 탈북민 출신 대북 전문가는 "2018년 남북정상간 합의된 사안들을 미끼로 남측에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친북성향인 여당의 재집권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입장에선 내년 대선에서 당연히 현 여당 후보가 당선되길 바랄 것"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 박 교수는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해도 북한이 얻어갈 것이 마땅치 않아 실제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예경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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