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일렁이는 은빛 군무(群舞), 억새가 춤추는 가을 제주(濟州)
제주관광공사가 가을 제주 여행 계획이 있다고 답한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행 계획 시기(설문조사 질문은 모두 복수 응답)를 묻는 말에 10월이라고 답한 비율이 43.7%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유를 좀 더 살펴보면요. 역시나 '청정한 자연환경'이 64.0%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해외여행 대체지로 적절해서'라는 의견이 33.2%, '관광 편의성이 좋아서'라는 답변이 27.7%, '이동거리가 적당해서'라는 응답이 24.0%로 뒤를 이었습니다. 제주여행 중 주된 계획 활동을 묻는 질문에는 자연경관 감상이 75.9%로 가장 높았고, 이어 식도락(맛집 여행) 63.1%, 산·오름·올레길 트레킹이 49.8%로 나타나 코로나 시대 언택트 여행을 할 수 있는 야외 활동의 선호도가 역시나 높았는데요.
가을 제주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억새'인데요. 가을이 되면 제주는 섬 전체가 억새로 물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제주에서 억새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만, 그중 가장 멋진 풍경은 단연 '산굼부리'와 '따라비오름'입니다. 오늘은 제주에 있는 368개의 오름 중에서도 억새의 모습이 아름다운 바로 이 두 곳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데요.
세계 유일의 평지 분화구인 '산굼부리'는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된 오름입니다. '굼부리'는 분화구를 일컫는 제주어인데요. 분화구라는 이름 때문에 산굼부리에 처음 오시는 분들 중에서는 한라산 정상을 등반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해오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요.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생각보다 짧아서 느긋하게 걷다 보면 어느새 전망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산굼부리 입구에서 분화구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네 갈래로 나뉘는데요. 먼저 제주 가을 여행의 백미인 억새 평원을 탐방할 수 있는 '억새밭길'을 시작으로 '돌길', '하늘계단길', '구상나무숲길'이 있습니다. 성인 걸음 기준으로 1시간이면 네가지 코스 모두 탐방 가능하니 하나도 빠짐없이 천천히 걸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산굼부리 정상에서는 전문 해설사분들이 해설을 해주시는데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것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해설시간이 되었는데 해설사분이 안 보이시면 정상에 있는 사무실에 가셔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간혹 신청자가 없는 경우 밖으로 나오시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코로나로 해설은 중단된 상황입니다.)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엄청난 규모의 분화구는 깊이가 140m, 넓이가 650m로 둥근 원형의 둘레는 무려 2km에 달하는데 이 규모는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넓고 깊습니다. 분화구에는 각종 온대, 난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며 노루와 오소리 등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등 야생동물의 서식처로도 유명합니다. 봄에는 분화구 밑바닥에서 구름이 올라가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아쉽게도 분화구 내부로는 현재 내려가 볼 수는 없습니다.
산굼부리의 억새 촬영은 석양이 질 무렵인 오후 5시 정도가 가장 좋습니다. 억새가 석양과 바로 앞 한라산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는 시간인데요. 전문가들은 해가 서쪽으로 저물 때 역광을 받은 영롱한 억새의 모습을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매해 산굼부리를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다만 문제는 억새 촬영은 날씨가 조금이라도 흐리거나 비가 오면 불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어렵게 여행 오셔서 이곳까지 찾아오셨는데 혹시 날씨 때문에 억새 촬영에 실패하였더라도, 일몰과 분화구 주변 풍경도 가을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니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산굼부리 정상에 가시면 억새밭 장관을 찍으려는 전문 사진가의 모습이 많이 보이실 텐데요. 괜히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촬영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따라비오름'으로 가볼까요. 산굼부리에서 나와 '송당'방면 '대천교차로'쪽으로 향하다 보면 '제동목장' 입구 교차로와 만나게됩니다. 여기서 '가시리마을'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한참을 내려가면 가시리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마을 안쪽 길로 자세히 안내된 따라비오름 이정표를 따라 한적한 시골길을 올라가다 보면 따라비오름 간이 주차장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비오름은 제주의 오름중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라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산 폭발 때 용암의 흔적이 만든 말굽형 굼부리(분화구)와 세 개의 작은 봉우리의 아름다움이 가을철 억새 풍경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곳인데요. 오름 입구에서부터 경사가 가파른 편이어서 생각보다는 힘들지만, 천천히 쉬면서 걸어도 20~3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오름입니다.
'따라비'의 어원은 '땅할아버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름 입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이 나오는데 억새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억새군락은 조밀해지면서 장관을 자아냅니다. 가을철이면 오름 곳곳을 억새가 뒤덮어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출렁이며 아름다움의 끝을 보게 만들어주는데요. 이때쯤이면 억새와 일몰 그리고 풍력 단지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오름이 가득 찹니다. 가을 제주 여행 중이라면 낙조 드리워지는 저녁에 억새의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는 따라비오름에 반드시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정상에 오르면 오른쪽에는 조선 최대 산마장이었던 '녹산장', 왼쪽에는 최고 품질의 말을 길러내던 '갑마장' 위치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사계절 언제 가도 예쁘고,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따라비오름은 오름의 여왕의 자격을 누리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가시리의 갑마장길과 풍력단지의 풍차까지. 이런 풍경을 찍을 때만이라도 사람의 모습을 풍경 속에 담아내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따라비오름에 가보시면 이 멋진 풍경에 사람이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는 생각을 저처럼 하시게 될 거예요.
요즘 제주여행의 트렌드는 번잡한 관광지보다는 소규모로 한적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비대면(언택트) 여행이 선호되는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놓쳐서는 안되는 점은 이번 가을여행 역시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와 거리두기 그리고 제주의 자연경관을 해치는 행위들은 스스로 지키며 보호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러 오셨다면 지금 바로 산굼부리와 따라비오름으로 떠나보세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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