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가을 모기 / 이세영

이세영 2021. 10. 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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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한 마리 모깃소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금부 나졸의 고문은 어찌어찌 견뎠어도, 모기의 괴롭힘만큼은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이동규 고신대 교수가 2017년에 쓴 '국내 서식 감염병 매개체의 생태학적 특성과 현황'이란 논문에는 "10여년 전까지는 (모기가)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에 최대 발생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9월 중순이 최대 발생 시기로 변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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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한 마리 모깃소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금부 나졸의 고문은 어찌어찌 견뎠어도, 모기의 괴롭힘만큼은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정약용은 유배 시절 ‘증문’(憎蚊)이란 시를 지어 미물에 대한 적개심을 절절히 드러냈다. 백성의 피를 빠는 지방관의 탐학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모기에 대한 직설적 증오로 읽어도 별 무리가 없다.

모기 주둥이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6주 전이었지만, 모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왱왱거리는 모깃소리에 잠을 설치거나, 선선해진 날씨를 즐기러 공원을 찾았다가 독한 숲모기에 당하고 오는 일이 다반사다. 이동규 고신대 교수가 2017년에 쓴 ‘국내 서식 감염병 매개체의 생태학적 특성과 현황’이란 논문에는 “10여년 전까지는 (모기가)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에 최대 발생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9월 중순이 최대 발생 시기로 변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가을 모기’의 극성은 그리 오래된 현상이 아니란 얘기다. 최근 두드러진 기후 변화와의 연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 모기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기온이 25~32도일 때다. 기온이 그보다 높으면 오히려 개체 수가 감소한다. 그런데 최근 몇년 간 서울의 8월 평균 최고기온은 32도를 넘나들었다.(2016년 32.6도, 2018년 33.3도) 8월 폭염이 모기 활동의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의 측정 기록을 봐도 2018년 이후엔 8월보다 9월에 채집된 모기 개체 수가 더 많다. 올해 가을 모기는 장맛비의 영향도 더해졌다. 여름 장마가 짧아 알 낳을 물웅덩이가 부족했던 탓에 7~8월 모기 활동이 줄었지만, 늘어난 가을 강수량에 기온마저 평년보다 오르면서 가을 모기가 번식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0년 전 정약용은 모기를 향한 미움이 부질없음을 한탄하며 ‘증문’의 마지막 절을 이렇게 끝맺었다.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蚊由我召非汝愆). 후대가 겪을 가을 모기의 역습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세영 논설위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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