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기본법과 스포츠패러다임 혁신
10년만의 성과! 변화의 시작종을 울리다
스포츠기본법 얘기다. 기나긴 여정 끝에 지난 2021년 8월 10일 공포되었다. 필자가 2010년 시안을 첫 연구 개발하여 성안한 이후 지난 2012년 제18대 국회에서 토론회를 거쳐 모 의원께서 「체육기본법」이란 법명으로 입법 발의한 지 만 10년 만이다.
「스포츠기본법」은 제1조에서 “스포츠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스포츠정책의 방향과 그 추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스포츠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나아가 국가사회의 발전과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법은 “국민 모두가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스포츠의 가치가 교육, 문화,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확산될 수 있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개인이 스포츠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도록 하고, 스포츠의 다양성, 자율성과 민주성의 원리가 조화롭게 실현되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제2조).
더불어 국내 법규 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스포츠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모든 국민은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스포츠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이하 ‘스포츠권’이라 한다)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제4조).
한마디로 이 법은 스포츠가 수년간 관행적으로 해왔던 ‘엘리트선수 육성을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패러다임에서 ‘국민 모두가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스포츠관계자에게 조문으로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그리고 국가주의 스포츠!
88 서울올림픽과 1983년 개정 국민체육진흥법
그동안 우리나라 스포츠가 ‘엘리트선수 육성을 통한 국위선양’의 상징적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정부가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국가 체육정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국민체육진흥법」 그 어디에도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란 말 즉, 스포츠가 국가주의에 헌신해야 하는 수단으로 명시된 법규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1988년도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면서 86 아시안게임 및 88 서울올림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스포츠를 통하여 국위선양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당시 정권의 의도에 따라 1982년 12월 31일 전부개정을 거치면서 ‘스포츠가 국위선양에 이바지’하는 수단으로 규정되었다.
물론 「국민체육진흥법」에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란 규정이 명문화됨으로 인해 가난하고 스포츠분야 인적 자원이 미약했던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엘리트스포츠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동·하계올림픽, FIFA 월드컵, 각종 세계선수권대회 등 대규모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포츠가 국위선양 정책의 수단이 되면서 스포츠를 통한 건강한 국민,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국민을 위한 정책목표는 계획서 안의 검은 글씨에 불과했고, 선수 및 지도자에게는 체육연금, 포상금, 각종 훈포장 제도를 도입하여 국제대회 메달 획득만이 ‘네가 사는 길이다!’를 강조하며 선수는 메달 따는 운동기계로, 지도자는 그 기계를 양성하는 기술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즉, 국위선양이 국가 스포츠정책의 최고 가치로 내세워지면서 스포츠계에 인권유린과 학습권 박탈의 불합리한 현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스포츠계 내·외부에서 우리나라 스포츠현장의 구태를 청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그 일환으로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향유하는 기본적 권리로서의 스포츠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면서 스포츠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스포츠패러다임 혁신! 스포츠기본법은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스포츠기본법」은 우리나라의 스포츠패러다임을 바꾸는 토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법 제정안 시안을 연구 개발하고 법 제정을 위한 각종 입법 지원을 수행했던 필자이긴 하지만 “반드시 바뀔 것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기본법」은 앞으로 우리나라 스포츠패러다임을 과거의 ‘엘리트스포츠 중심’에서 ‘모두가 차별 없이 누리는 스포츠권 보장’이라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강제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 스포츠패러다임 변화의 방향성을 살펴보자.
첫째, 국가 스포츠정책 결정 구조가 바뀐다. 즉, 국가 스포츠정책 결정이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의 범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국가 스포츠정책 결정이 범정부 차원으로 상향되어 이루어지므로 정책의 통일성과 연계성, 계속성 등이 유기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각 부처에서 스포츠(운동을 포함한다.)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할 경우 「스포츠기본법」에서 규정한 기본이념과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에서 의결한 ‘스포츠 진흥 기본계획’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스포츠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격상될 수밖에 없는 시작인 것이다.
둘째, 스포츠 가치 실현이 국가 스포츠정책의 기본이념이자 핵심가치가 된다. 그간의 국가 스포츠정책은 어쩔 수 없이 엘리트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에 더 큰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물론 ‘스포츠를 통한 국민 행복’, ‘사람을 위한 스포츠’ 등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비전으로 제시하기도 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의 메달 획득과 세계 또는 아시아 몇 위 수준 유지라는 목표 달성에 몰입된 나머지 예산이 엘리트스포츠 육성 중심으로 치우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포츠의 가치가 국가 스포츠정책의 기본이념이 되어 교육, 문화,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스포츠가 비로소 국민의 삶 속에 투영되는 뿌듯한 스포츠정책의 즐거운 외출의 시작인 것이다.
셋째, 스포츠활동 참여에서의 차별과 비민주적 행태가 차단되게 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개인이 스포츠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도록 하고, 스포츠의 다양성, 자율성과 민주성의 원리를 조화롭게 실현시킬 의무를 갖게 되어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이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스포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고, 그 책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우리 주변 아동, 청소년, 노인 및 장애인이 더 자유롭고 손쉽게 스포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스포츠복지 지원전달체계 또한 제대로 갖출 수밖에 없다.
넷째, 모든 스포츠활동에 스포츠정신에 부응하는 윤리성이 확보되게 된다. 그동안 스포츠계는 각종 비리, 비위, 폭력 행사 등 비윤리적, 불공정 행태들이 만연해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장관의 인가를 받아 체육단체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스포츠윤리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스포츠윤리가 스포츠계 전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포츠경기 및 스포츠를 매개체로 한 각종 사업에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이를 시행하지 않으면 체육인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위법자가 된다.
패러다임 혁신의 성공! 풀뿌리 경기단체를 키우자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대회가 끝났다. 두 대회의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확실히 뭔가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압감이 그 무엇보다도 큰 올림픽대회에서도 성적보단 스스로를 즐기며 패배의 울분과 눈물보단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엄지 척’의 새로운 장면은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태어나 독특한 자기 트렌드를 형성한 MZ(Millennials+Generation Z)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들 MZ세대 선수들의 성장을 더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스포츠기본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변화해야 하지만 체육단체도, 스포츠지도자도 변해야 한다. 선수가 변한 것만큼 스포츠과학이 기본이 되고 이 기본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지도자가 더 많이 나와야 하며, 풀뿌리 경기단체가 더 변화·성장해야 한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장애인체육회 같은 국가주의 체육을 집권적으로 대리했던 중앙체육단체도 변해야 한다. 중앙체육단체가 주도자로 참여하는 국가주의 체육이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체육회가 아닌 중앙경기단체와 지방경기단체가 더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이 스포츠클럽과 함께 스포츠 발전의 풀뿌리이자 기둥이 될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한다.
「스포츠기본법」 하나 새롭게 제정되었다 해서 국가 스포츠정책의 패러다임이 쉽게 바뀔 수는 없다. 문제는 법에 따라 스포츠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스포츠계 현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스포츠정책 전달체계 혁신을 얼마만큼 잘 이루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혁신의 방향성과 시작점은 풀뿌리 경기단체를 키우기 위한 정부와 스포츠계의 노력부터여야 한다. 제 역할을 되찾아 열심히 하고 싶은 풀뿌리 경기단체는 오늘도 대한민국 스포츠패러다임 혁신에 배고프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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