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진단 어렵고 백신 효과 불투명한 'HIV'감염..코로나 사각지대 되나

이정아 기자 2021. 10.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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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보건소에서 익명 검사가 힘들어지며 HIV 신규 감염 신고 건수가 감소했다. HIV를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기 힘들어지는 데다, HIV 환자는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사각지대에서 HIV가 은밀히 확산되고, 면역저하로 인한 코로나19 중환자가 늘어날 위험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코로나19 진단검사로 인한 업무 과부하에 노출된 보건소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익명검사를 잠정 중단했다. 익명검사 중단으로 검사 건수는 물론 HIV 신규 감염 신고 건수가 감소해 조기 진단과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HIV 환자는 백신을 접종받아도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오면서 코로나19 사각지대에 놓인 HIV가 은밀히 확산되며 면역저하로 인한 코로나19 중환자가 늘어날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HIV에 감염되면 바이러스가 면역세포인 CD4 T세포를 주로 공격해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AIDS)으로 진행될 수 있다. UN 산하 에이즈전담기구인 유엔에이즈프로그램(UNAIDS)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세계 HIV와 AIDS 신규 감염자 수는 23% 감소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칠레만 유일하게 증가세다. 국내 HIV·AIDS 환자 수는 2010년 837명에서 2019년 1223명으로 10년간 46%나 늘어났다.

문제는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보건소 업무가 코로나19 검사에 집중돼 무료, 익명으로 운영했던 HIV 검사가 잠정 중단됐다는 점이다. 지난 1일 질병관리청 감염병정책국 에이즈관리과 연구팀이 '주간건강과질병'에 발표한 역학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HIV 신규 감염 신고건수는 1016명으로 전년(1223명)대비 16.9%나 줄었다. 인구 10만명당 신규 감염률이 2.36명에서 1.96명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사람들끼리 접촉빈도가 줄어들며 HIV 전파가 줄었을 수도 있지만, 보건소들이 코로나19 검사 업무에 집중해 HIV 검사를 중단하면서 신규 감염자가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병의원에서 HIV 신규 감염 신고건수는 2019년 754명에서 2020년 731명으로 3%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보건소 신고건수는 같은 기간 367명에서 166명으로 54.8%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HIV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야 감염자의 증상도 완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도 막을 수 있는데, 검사율이 줄어든 만큼 이 시기를 놓치는 감염자가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HIV 감염자들이 건강한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져 코로나19 감염에도 취약한데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아도 예방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이미 학계에서는 HIV 감염자가 B형간염 백신이나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을 맞아도 예방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매튜 스피넬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감염학과 교수팀은 지난 5월 이전에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맞은 HIV 감염자 100명의 혈액 샘플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형성률을 조사했다. 이들 중 25명은 미국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을, 75명은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을 맞았다. 

그 결과 HIV 감염자는 비감염자에 비해 코로나19 중화항체 형성 비율이 41.6% 정도 떨어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할 때 결합하는 스파이크단백질에 대한 항체 수치(항RBD 항체 수치)도 43%나 더 낮았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2일 감염병 분야 세계최대학술대회인 'ID위크2021'에서 발표됐다. 

스피넬리 교수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낮은데다 백신 효과도 떨어지는 HIV 감염자들은 부스터샷 접종과 함께 항바이러스 치료요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이달 말부터 60세 이상 고령층과 면역저하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접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해외에 비해 HIV 감염 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HIV 감염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연구팀은 1일 내놓은 역학보고서를 통해 "지속적인 관찰로 지난해 국내 HIV 신규 감염 신고건수 감소 원인이 거리두기 강화 정책으로 실제 감염이 감소한 것인지 보건소의 검진 업무 중단으로 다수가 드러나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HIV 감염 의심자가 조기에 진단, 치료하고 확산을 최소화하도록 국가적으로 관리대책을 마련해 HIV 검진 접근성과 치료율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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