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히트의 공신, 미술.. "미로복도와 숙소의 계단식 침대, 경쟁사회의 오브제"

박준호 기자 2021. 10. 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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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채경선 미술감독 인터뷰
"동화적, 한국적 판타지물 콘셉트" 컬러풀한 세트장, 무채색 현실과 극명 대조
합숙소·골목길 등 세트장, 현실감 배가.. VIP룸 논란엔 "동물의세계 표현일 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미술을 책임진 채경선 미술감독. /사진 제공=채경선 미술감독
[서울경제]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의 합숙소 모양이 처음부터 지금 같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일반적인 2층 침대 형태를 염두에 뒀는데, 살기 위해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경쟁사회를 상징하는 오브제로서 계단과 사다리를 넣어서 숙소를 디자인하고 싶었죠. 게임장으로 이동할 때 거치는 미로 복도의 복잡한 계단도 ‘누굴 밟고 올라간다는’ 경쟁사회를 보여주고자 했고요.”

판화가 에셔의 작품을 오마주한 ‘오징어 게임’ 속 미로 복도의 화려함은 초반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태풍급’ 인기를 누리게 된 원동력 중 하나로 작품 속 미장센을 빼놓을 수 없다. 독창성이 넘치는 세트장의 외양과 게임 참가자 및 진행요원들의 의상이 뿜어내는 화려함은 목숨을 건 잔혹한 생존 경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청자들을 빨아들인다. 특히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한 대규모 게임 세트에서는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주인공 기훈 역의 배우 이정재는 세트장을 가리켜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작품 공간의 시각적 요소를 책임진 채경선 미술감독은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황동혁 감독으로부터 전달받은 콘셉트는 동화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판타지였다”며 “참가자들이 ‘나의 동심은 이랬는데’ 하며 느끼는 저마다의 향수를 세트장을 통해 펼쳐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힌트를 얻은 것은 딸아이의 그림책이다. 컬러풀하면서 풍부한 오브제를 갖춘 세트장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이란 상충된 이미지는 작품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됐다. 반면 게임장 바깥의 현실은 우리의 일상을 반영하듯 무채색으로 표현해 대비를 이뤘다.

참가자 456명이 모인 숙소의 계단과 사다리는 경쟁사회를 상징하는 오브제다. 콜로세움을 연상하는 모양으로 완성됐다. /사진 제공=넷플릭스

극 초반 게임의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이 들어서는 합숙소는 극중 모든 세트장을 CG 없이 직접 만들도록 방향성을 정하는 기준이 됐다. 456명이 직접 게임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담으려면 합숙소부터 모든 인원이 들어가야 했다. 채 감독은 “그 안에서 도열도 하고 폭행도 벌어지기 때문에 숙소를 실제로 만들기로 했다”며 “그러다 보니 다른 세트장도 스케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달고나 뽑기 게임장의 거대한 놀이기구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게임의 대형 인형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숙소 세트는 터널의 흰색 타일과 대형마트를 참고해 각각 터널 위에 버려진 사람들과 인간이 물건처럼 쌓여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계단과 사다리로 이어놓은 침대들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해 숙소 내 살육전 장면에서 톡톡히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기훈·상우·새벽 셋이 덩그러니 남았을 때의 공간감적 차이도 극대화한다.

합숙소와 더불어 채 감독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는 세트장은 ‘구슬치기’ 게임의 배경이 된 골목길이다. 진짜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다 보니 이 세트를 만드는 데만 두 달 정도가 걸렸다. 문과 담벼락 등을 구조화하며 연극 무대의 요소를 넣었고, 70, 80년대풍의 디테일한 소품과 마감재는 직접 만들었다. 이 게임장에서 참가자들은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은 한 사람을 파트너로 고르지만, 결과적으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는 “정들었던 사람을 죽게 해야 한다는 양가적 감정은 진짜같지만 가짜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의 감정은 무엇이 진짜냐’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세트장 곳곳에는 게임을 상징하는 동그라미·세모·네모가 숨겨져 있다. 참가자들이 설계자의 그림 안에 갇혀 있음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장치다.

‘구슬치기’가 열린 골목길 세트장은 채경선 미술감독이 가장 애착을 보인 곳 중 하나다. /사진 제공=넷플릭스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VIP룸 장면에서는 사람을 의자·테이블 등의 도구처럼 썼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성의 도구화라는 지적을 받은 데 대해 채 감독은 “남녀 모델이 모두 등장한다”며 동물의 세계를 보이려 했을 뿐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VIP들은 사람을 생존 게임의 말로 쓴다는 점에서 이성 없이 욕망만 있는 동물”이라며 “세트도 약육강식의 정글처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힘센 동물의 가면을 쓴 VIP들과 달리, 도구처럼 쓰인 모델은 약한 동물로 바디페인팅을 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의 미장센이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된 데 대해 채 감독은 “고생한 보람이 있다. 이렇게까지 큰 반응이 올 줄 몰랐다”면서도 다음 작품 때문에 바빠서 성과를 기뻐할 겨를도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영화나 시리즈 콘텐츠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한국 영상물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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