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만 압박 중단' 촉구에..중국 "상관말라" 보란듯 대규모 무력시위
[경향신문]
중국 군용기 56대가 지난 4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 지난 1일부터 나흘 연속 이어진 최대 규모 무력 시위다. 미국이 대만에 대한 압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자 중국은 더 많은 군용기를 투입하며 대만 문제에 상관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대만 국방부는 지난 4일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6대의 중국 군용기가 대만 ADIZ에 진입했다고 5일 밝혔다. 이날 대만 국방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J-16 전투기 34대와 SU-30 전투기 2대, Y-8 대잠기 2대, H-6 폭력기 12대 등 중국 군용기 52대가 전날 낮 대만 본섬과 프라타스군도(둥사군도) 사이의 서남부 ADIZ에 들어왔다. 이어 야간에도 J-16 전투기 4대가 같은 지역을 비행하면서 이날 하루 동안만 모두 56대의 중국 군용기가 대만 ADIZ를 넘나들었다. 이는 대만 국방부가 지난해 9월 관련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대규모 군용기를 동원한 중국의 대만 ADIZ 내 무력 시위는 나흘 째 이어진 것이다. 국경절인 지난 1일 군용기 38대가 투입된 데 이어 2∼3일에도 각각 39대와 16대의 군용기가 대만 ADIZ에 진입했다. 나흘간 투입된 군용기 숫자만 모두 149대에 이른다. 중국은 특히 미국이 대만을 향한 군사적 압박 중단을 요구하자 군용기 투입 규모를 사상 최대로 늘려 응수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미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오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중국의 도발적 군사 활동을 매우 우려한다”면서 대만에 대한 군사·외교·경제적 압박과 강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최대 군용기 투입이 이뤄진 직후 “미국의 논평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대만 문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상관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대만 독립을 꾸미는 것은 죽음의 길로, 중국은 모든 조치를 통해 어떠한 형태의 대만 독립 도모도 분쇄할 것”이라며 “국가 주권과 영토를 지키겠다는 중국의 결심과 의지는 확고부동하다”고 강조했다.
건국기념일인 국경절 연휴에 계속되고 있는 중국의 무력 시위는 대만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대만 문제를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활용하는 동시에 오는 10일 대만(중화민국) 건국기념일을 앞두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 대만 독립 등에 관한 도발적 연설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동맹국과 함께 인도·태평양에서 군사적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필리핀해에서 미국과 영국, 일본,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가 다국적 합동해군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4일에는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이 대만과 필리핀 사이 바시해협을 통과해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와 함께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군용기의 기록적 군사 훈련이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이날 사설에서 “최근 공군의 움직임은 대만 섬의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일 뿐 아니라 대만해협 상황의 심각성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대만 섬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거나 중국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거듭 대만에 대한 압박 중단을 촉구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외교·경제적 압박과 강요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우리는 대만해협을 가로지르는 평화와 안정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있고,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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