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보다 독해진 바이든의 대중 무역압박..경제전쟁은 계속
캐서린 타이-류허 조만간 첫 화상 대좌.."미중 탈동조화 피할 수 없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중국이 줄곧 기대했던 대중 고율 관세 완화라는 '선물'은 끝내 없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4일(현지시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중 무역정책의 기본 구상을 공개하면서 중국이 미국 상품 구매 확대 등 1단계 무역 합의에 따른 의무부터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고율 관세 유지를 비롯한 대중 무역 압박 정책의 틀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게다가 미국 측은 양자 협의를 통해서는 중국의 '잘못된 경제·무역 관행'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중국과 2단계 무역 합의에 나서는 대신 유럽 등 핵심 동맹과 협력해 중국의 변화를 외부에서 압박하기로 방향을 잡아 미중 간 '경제 전쟁'의 전선은 더욱 복잡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동맹 결집해 중국 변화시켜나가겠다는 미국
타이 대표의 지난 4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8개월간 준비해온 대중 무역 정책의 방향을 처음으로 정교하게 제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타이 대표의 공식 연설과 미국 관리의 현지 언론 백브리핑을 통해 전달된 미국 정부의 핵심 메시지는 ▲ 중국은 미국 상품 구매 확대 등 1단계 무역 합의 의무부터 지켜라 ▲ 일부 상품의 관세 면제를 선택적으로 인정하되 대중 고율 관세의 기본 틀은 유지한다 ▲ 1단계 무역 합의와 같은 양자 대면을 통한 2단계 무역 합의 협상을 고려치 않고 동맹과 연대해 중국의 '비시장적 관행'(non-market behavior)를 변화시키겠다 등으로 요약된다.
'치킨 게임' 식의 고율 관세 상호 부과전을 벌이던 미중 양국은 2019년 12월 관세 난타전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을 전제로 2020∼2021년 2년에 걸쳐 중국이 미국에서 2천억 달러(약 237조원)어치의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 구매하는 것을 골자로 한 1단계 무역 합의를 체결했다.
다만 중국의 추가 구매 약속은 어정쩡하게 이행되고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연구소(PIIE)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1∼8월 중국의 미국 상품 수입은 중국 측 통계를 기준으로 산출했을 때 목표의 69% 수준에 그쳤다.
전체적으로 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대중 무역 압박 정책의 '유산'을 버리지는 않되 고율 관세를 지렛대로 삼은 기존의 무역 합의가 중국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시장 경제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동맹 결집을 통해 더욱 강력한 포위망을 형성해 중국을 몰아붙이겠다는 구상을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지향점은 더욱 높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의 길목에서 무역 전쟁을 봉합한 1단계 무역 합의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2천억 달러의 '전쟁 배상금'을 챙기는 당면한 실익에 만족했다.
이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장기적 경제 이익 수호를 위해서는 중국 특유의 국가 주도 경제 체제를 반드시 바꿔놓아야 한다는 문제 인식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타이 대표는 이번 연설에서 1단계 무역 합의를 두고 "중국의 무역 관행이 미국 경제에 끼치는 해로운 충격에 관한 근본적 우려를 유의미하게 다루지 못했고 심지어 1단계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육성) 목표 산업에 수십억 달러를 퍼붓고 있다"며 "이는 미국과 전 세계 노동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동맹과의 공조를 통한 대중 무역 압박 강화 방침은 미중 신냉전을 배경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안보·군사·기술 등 다른 여러 분야의 대중 포위·압박 전력과 궤를 같이한다.
타이 대표는 "중국의 계획에는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가 공유하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의미 있는 개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이런 문제의 해결이 동맹과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중 무역 정책 기조와 관련해 이미 가시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29일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TTC)를 가동하면서 글로벌 기술 및 무역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협력을 본격화하고 나섰는데 TCC는 중국 견제 목적으로 출범한 조직으로 평가된다.
1단계 무역합의 유효기간 곧 종료…무역전쟁 '안전핀' 사라지나
중국은 그간 주요 계기마다 대중 고율 관세 완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해왔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무역 정책에 실망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수줴팅(束珏婷)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미중 경제·무역 분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중 양국이 상호 고율 관세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후에도 연간 2천500억 달러(약 297조원)에 달하는 중국 제품에 기존 25% 관세를 계속 부과해왔고 중국도 미국 제품에 맞불 관세를 그대로 유지해왔다.
결과적으로 미중 관계 악화의 상징이던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의 기소 연기 조치를 계기로 미중 갈등이 부분적으로나마 완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일각에서 싹트기도 했지만 무역 분야를 포함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 전쟁 구도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군다나 미국이 2단계 무역 합의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가운데 올해 12월이면 1단계 무역 합의가 효력을 다하게 된다.
1단계 무역 합의는 미중 무역 전쟁을 일시적으로나마 봉합했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 속에서 일종의 안전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이후 미중 무역·경제 분야가 협력보다는 갈등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향후 일정 기간 미중 경제·무역 관계의 향배는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이는 타이 대표와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 간 첫 대좌의 결과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 관리는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에서 타이 대표와 류 부총리가 '조만간' 화상 회담 방식으로 마주 보고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은 경제 외에도 군사·안보·기술·인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미중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적 경쟁 속에서도 기후대응, 북핵 등 문제에서 선택적인 협력을 추구하려 하지만 중국은 중국을 '세계 2위의 대국'으로 존중해야 협력이 가능하다면서 미국 측이 요구하는 '선택적 협력'에는 응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의 새로운 대중 강경 무역 정책 발표 속에서 중국 측이 물밑에서 조율 중이던 타이 대표와 류 부총리 간의 회동에 최종적으로 응할 것인지도 관심이다.
중국 측에서는 아직 관련 회동에 관한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워싱턴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윤선 선임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중) 무역 관계는 이미 긴장 상태"라며 "바이든의 무역 정책이 트럼프보다 훨씬 우호적일 것이라고 중국이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선택적 탈동조화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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