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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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는 맛이 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로 시작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가장 가을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김동규 교수를 만나고 싶다.
수만 번을 말해도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하겠지만 평소 살갑지 않던 아들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며 인생에 가장 멋진 가을날을 맞을 어머님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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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는 맛이 있다. 어머님의 손맛처럼 누가 부르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로 시작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가장 가을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시원한 바람과 단풍이 버무려지는 10월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이 노래가 들려온다.
수많은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불렀지만 이 노래는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바리톤 김동규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
며칠 전 김 교수의 콘서트를 관람하러 서울 예술의전당을 다녀왔다. 2시간이 넘는 멋진 공연 중에 최고의 감동은 바리톤 김동규와 팔순이 넘으신 그의 어머님 소프라노 박성련 여사의 이중창이었다.
“오늘 공연이 최근 건강이 나빠지신 저의 어머님의 마지막 공연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며 어머니를 무대로 모셨다. 팔순 노모의 손을 자기 팔뚝에 얹고 함께 열창하는 모습을 보니 필자의 어머니와 오버랩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필자는 군대를 제대하고 늦깎이 고시생이 됐다. 물론 고시원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고스란히 부모님의 몫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는데 이상하게도 꼬박꼬박 송금되던 생활비가 끊겼다. 고시원비를 내지 못하게 되자 전화를 걸어 ‘공부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냐’며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어머니는 연신 미안하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생활비가 송금됐다.
속 좁은 아들은 그래도 섭섭한 마음을 풀지 못한 채 화풀이를 하려고 주말에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이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필자는 철이 들고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필자가 군에서 제대할 무렵 어머니께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남의 돈까지 끌어다주셨다가 사기를 당해 집까지 팔아야 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내색도 안 하시고 그때부터 직장을 다니시며 고시원비를 마련해 보내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빚 독촉에 시달리느라 돈을 보내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필자의 전화를 받으시고 나이 50이 넘어 겨우 장만하시고 그렇게 소중히 여기시던 작은 보석 반지를 파셨다고 한다. 물론 그 돈은 고스란히 필자에게 송금됐던 것이다.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흐느껴 울면서 결코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게 공부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처럼 세상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그런데도 무뚝뚝한 아들들은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후회한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김동규 교수를 만나고 싶다. 골프를 좋아한다고 하니 라운딩에 초청해서 한참을 함께 걸으며, 수많은 관객 앞에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라고 소개할 수 있는 그의 용기를 배우고자 한다.
수만 번을 말해도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하겠지만 평소 살갑지 않던 아들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며 인생에 가장 멋진 가을날을 맞을 어머님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고운 어머님의 손가락에 꼭 맞는 반지를 사드려야겠다.
너무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결코 늦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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