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배구, 정지석 없는 배구. 대한항공의 새로운 도전 [V리그 개막특집]

김종건 기자 2021. 10. 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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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2021~2022시즌 V리그가 10월 16일 대장정의 막을 올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아직 일상 복귀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남녀부 14개 구단은 구슬땀을 흘리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배구담당기자들이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각 구단의 훈련장을 찾았다. 비 시즌 훈련의 성과와 새로운 퍼즐 맞추기의 결과, 각 팀의 장단점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팀의 첫 번째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V리그 첫 남자부 외국인지도자였던 산틸리 감독은 “잘 만들어진 요리에 약간의 매운맛을 첨가할 뿐”이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지켰다. 급한 성질 탓에 가끔 심판과 몇 차례 트러블을 만들고 자존심 강한 선수들과 마찰도 빚었지만 내부문제를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안전운행을 마쳤다.

박기원 감독이 4년간 만들어 놓은 바탕이 워낙 탄탄했다. 곽승석~정지석의 국가대표 리시브라인, 오래 함께 한 주전선수들끼리 다져진 조직력, 라이트 임동혁의 성장, 베테랑 세터 2명의 안정적인 연결이 어우러진 팀 구성은 빈틈이 없었다. 정지석은 시즌과 챔피언결정전 MVP 2관왕을 달성하며 개인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산틸리 감독은 통합우승 이력서를 안고 터키리그로 떠났다. 점보스 만의 배구와 문화를 V리그에 전파하고 싶다는 시즌 목표를 설정한 대한항공은 34세의 토미 틸리카이넨을 새로운 기장으로 선택했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 스포츠동아DB
남들이 하지 않은 것, 보는 맛을 강조한 호기심 배구

틸리카이넨 감독은 첫 기자회견에서 ‘호기심 배구’를 말했다. 팬과 관중에게 새로움을 주고 경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싶다는 뜻이 담긴 화두였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호기심 배구가 무엇이냐”고 묻자 “일단 우리의 훈련을 한 번 보시라”고 했다.

신갈 훈련장의 첫 인상은 산만했다. 코트에서 각자 편하게 훈련을 준비하던 선수들은 정해진 훈련시간이 되자 가로 세로로 겹쳐진 3개의 코트에 삼삼오오 모여서 다양한 공놀이를 했다. 감독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싶어서 구단에 3개의 코트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여러 코트에서 부분전술 훈련이 동시에 벌어졌다. 선수들은 훈련시간 내내 코트를 이동했다. 감독은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선수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전혀 훈련처럼 보이지 않은 공놀이였지만 선수들의 말은 달랐다. “1시간만 하면 녹초가 된다. 더 힘들다”고 했다. 유럽과 일본배구의 훈련방식을 창의적으로 접목시킨 감독은 계속 선수들 사이에서 원하는 동작과 플레이 패턴을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3명의 통역이 동시에 말을 주고받으면서 훈련장은 시끌벅적했다.

스포츠동아DB
시스템과 점보스 웨이

틸리카이넨 감독은 어떤 그림을 그린 뒤 선수들을 시스템의 일원으로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토종 감독은 선수를 만들고 외국인감독은 팀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이는 어려도 감독경력이 만만치 않은 그는 쉼 없는 대화로 자신의 생각이 스며들도록 했다. 상황판에는 팀의 목표인 새로운 팀 문화와 플레이방식이 적혀져 있다. 스피드와 새로운 기술, 준비성, 향상, 컨트롤과 효율성이 키워드였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호기심을 강조했고 존중과 투지, 긍정적인 생각을 요구했다. “나는 왜 배구를 하는가” “선수로서 내 발자취는 무엇인가” “선수로서 그 답을 알고 있다면 동기부여는 저절로 된다”는 문구가 보였다.

안방에서 2020도쿄올림픽의 수준 높은 경기를 본 팬들은 새로운 배구를 갈망한다. 총재구단 대한항공은 이런 팬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팀과의 우승경쟁보다는 한국배구에 새로운 방식을 남기고 싶다는 큰 꿈을 꾼다. 그 것이 바로 ‘대한항공만의 방법(Jumbos Way)’이다. 새로운 배구에 관심이 있거나 훈련을 보고 싶어 하는 지도자와 팀에게는 언제든지 훈련장을 개방하고 자료도 제공할 생각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지석 변수

대한항공은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며 준비했던 KOVO컵에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정지석이 준결승 도중 이상이 생기자 교체했는데 이후 주도권을 내주면서 물러났다. 감독은 대회 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 준비하지 못했던 자신을 먼저 반성했다. KOVO컵은 이번 시즌의 대한항공을 암시하는 듯했다. 지금 정지석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팀 훈련에 불참한 상태다. 구단은 법적인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훈련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언제 일이 마무리될지 누구도 모른다. 최종결정이 나온 다음에야 대한항공의 후속 조치가 나올 수 있다. V리그와 모기업의 이미지까지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더 큰 것을 봐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항공도 한국배구연맹(KOVO)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정지석. 스포츠동아DB
시즌 전력구성의 밑그림

공석인 정지석의 자리는 루키 정한용과 이준으로 채우려고 한다. 곽승석과 함께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보여주느냐에 시즌성패가 달려 있다. 라이트는 임동혁과 새 외국인선수 링컨이 역할을 분담한다. 한때 임동혁의 레프트 포지션변경을 검토하고 연습경기에도 출장했지만 신인드래프트에서 원했던 2명의 레프트를 확보하자 임동혁은 다시 라이트로 돌아갔다.

다른 팀의 외국인선수와 비교해 링컨의 타점과 파워가 위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감독은 외국인선수라고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토종선수처럼 대한항공 시스템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대한항공은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무조건 외국인선수에게 올라가는 2단 연결과 높은 패스에 의한 뻥 배구가 아닌 새로운 득점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상대의 2~3명 블로커 앞에서 요행을 바라는 공격 대신 스피드와 연타, 리바운드 공격 등으로 높은 효율성을 추구한다. 감독은 유난히 범실을 싫어한다.

전체적으로 양쪽 날개공격은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중앙은 더 강해진다. 센터 김규민이 전역한다. 고졸신인 김민재도 눈여겨봐야 한다. 감독은 팀에 합류하자마자 연습경기에 투입했다. 배짱 있는 18세 선수의 등장에 삼촌뻘 선배들은 긴장한다. 팀을 무사히 목적지에 안착시켜줄 2명의 베테랑 조종사 한선수와 유광우의 존재는 대한한공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다.

●IN&OUT ▲IN=링컨(새 외국인선수), 박지훈(삼성화재 트레이드), 최진성(자유신분선수), 정한용, 이준, 김민재, 정진혁(이상 신인 드래프트) ▲OUT=백광현(삼성화재 FA이적), 황승빈, 한상길(이상 삼성화재 트레이드) 이지율, 손현종(이상 군입대)

신갈 |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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