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담이론과 원더우먼, 정말 제목이 중요해?[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10. 5. 1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육지담의 이름이 육지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엔 ‘육지담 이론’이라 불리는 가설이 존재한다. 2014년 <쇼미 더 머니3>에 출연했던 고등학생 래퍼 육지담은 심사위원에게 만장일치로 ‘패스’를 받은 초반 라운드와 달리 점점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누리꾼들이 제기한 것이 바로 ‘육지담 이론’이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김준호였다면? 배우 마동석의 이름이 이동석이었다면? ‘육지담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결코 지금과 같은 존재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이론은 ‘브랜드 네이밍’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예시인 셈이며….

SBS 드라마 <원 더 우먼> . SBS 제공

그러니까 다시 ‘육지담 이론’을 떠올린 건 이하늬가 1인 2역을 맡은 드라마 <원 더 우먼>을 보고 이것이 재밌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려 결심했을 때다. “폭력조직 ‘남문파’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중앙지검의 부패한 정치검사 조연주는 사고로 인해 갑자기 기억을 잃고 자신과 도플갱어인 재벌그룹 ‘한주’의 며느리 강미나로 살아가게 된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설정인가! 혼자서 30명을 단번에 제압하는 액션신이나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기억상실’ 소재의 유머도 뛰어나다. ‘One The Woman’이란 문장이 이 드라마의 핵심을 잘 아우르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극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담아내기엔 아쉬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스판 비키니 슈트를 입은 오래된 만화 속 ‘원더우먼’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제목은 정말 중요하다. 친구에게 웹툰 <유부녀 킬러>를 추천했을 때 흘렀던 정적과 부연 과정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니 이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유부녀 킬러’가 아니고….” “너는 평소에 ‘유부녀 킬러’에 대해서 생각해…?” “아니! 그러니까 이 웹툰 제목을 좀 고쳐보자면 ‘결혼한 여자 킬러’인건데….” “더 이상해졌잖아.”

<유부녀 킬러>는 중소기업 영업팀으로 위장한 킬러조직에서 저격수 ‘킹피셔’로 활동 중인 기혼 여성 유보나의 이야기다. 그는 개인적인 의뢰를 통한 청부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상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인물을 암살하는데, 주로 저지른 죄에 비해 형이 가볍다고 판단되는 중범죄자, 권력과 돈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악질들이 타깃이다. 만화는 스나이퍼, 고문기술자, 독극물 전문가, 조직의 보스 등 다양한 여성인물을 통해 장르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동시에 가부장적인 시어머니와의 갈등, 일과 임신, 출산, 육아의 양립 등 기혼여성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역시 치밀하게 그려낸다.

<유부녀 킬러>는 중소기업 영업팀으로 위장한 킬러조직에서 저격수 ‘킹피셔’로 활동 중인 기혼 여성 유보나의 이야기다. 만화는 스나이퍼, 고문기술자, 독극물 전문가, 조직의 보스 등 다양한 여성인물을 통해 장르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동시에 가부장적인 시어머니와의 갈등, 일과 임신, 출산, 육아의 양립 등 기혼여성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역시 치밀하게 그려낸다. 카카오 웹툰 캡처.

구글 검색창에 ‘아가씨’를 치면 나오던 수많은 불법 촬영물이 영화 <아가씨>의 개봉 후 김태리와 김민희의 사진으로 대체된 것처럼, <유부녀 킬러>의 작가 ‘YOON’과 ‘검둥’은 제목의 오해를 일부러 의도한 뒤, 작중 유보나라는 캐릭터의 활약을 통해 저급한 이미지와 짝을 이루고 있었던 ‘유부녀 킬러’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전유하는 데 성공한다. 아무나 참여하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세상에서 무의식은 단어를 쉽게 오염시킨다. <유부녀 킬러>라는 제목이 가진 대담한 위트는 여성 연예인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저속한 연관 검색어를 정화하거나, 차별을 유발하는 호칭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교정해내는 이들의 지치지 않는 의식을 연상하게 한다.

<원 더 우먼>이란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음. ‘원더우먼’이라는 이미지의 진부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곧 ‘원더우먼’을 검색하면 이하늬의 호쾌한 얼굴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좋은데? 결국 이름과 제목에 고여 있는 의미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 가진 의식과 역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육지담의 이름이 아주 평범했더라도, 나는 그의 노래 ‘밤샜지’를 들으며 야근을 버텼을 테니까….

※ 해당 칼럼이 원더우먼 시리즈가 갖는 의미를 왜곡, 소거했다는 비판에 대해 필자가 추가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드라마 <원더우먼>의 제목에 대한 소재로 글을 쓰면서 ‘스판 비키니 수트를 입은 오래된 만화 속 원더우먼의 이미지가 진부한것이고, 그것을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전복시켜준다면 반가운 일’이라는 논조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그와 함께 웹툰 <유부녀킬러>가 내용을 통해 단어를 전복하는 방식, 그리고 영화 <아가씨>의 제목이 바꾼 인터넷 검색어 결과의 변화 등을 나열해 결과적으로 <원더우먼>이라는영화, 캐릭터가 가진 상징과 힘을 부정하고 ‘오염된 것’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원더우먼>이라는 시리즈가 가진 동력과 그것이 여성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관용적으로 쓰던 ‘제목’,‘이름’이 어떻게 전복되는지에 대해서만 치중하며 쓴 게으른 결과입니다.

부족함을 느끼며 글을 덧붙여 바로잡으려 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이 코멘트를 먼저 드리며 글의 오류에 대해 더 많은 질책 부탁드립니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