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엔터테인먼트의 M&A 방정식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M&A(인수합병)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작하는 쪽의 입장에선 몸집을 키워야만 유통 플랫폼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만큼, 늘 이합집산이 반복된다. 예를 들면, 신인가수 한 명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일은 신생 기획사에겐 엄청난 도전이지만, 유명 가수를 보유한 기획사는 ‘끼워넣기’식으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잘나가는 제작진영은 몸집을 키워 협상력을 높이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자본력이 생기면 미디어를 인수하면서 E&M(Entertainment&Media)식으로 결합하기도 하고, 또 떼어내기도 한다.
코로나 세상을 전후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M&A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가 결합하는 E&M이 주류였던 세상에서 OTT라 불리는 새로운 유통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제작진영의 M&A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제는 IPTV, 케이블TV, OTT, 유튜브, 포털, 앱, 스마트폰, PC, 태블릿PC, 인터넷TV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창작물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플랫폼 진영은 늘 ‘킬러 콘텐츠’에 목마르기 마련이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미나리>, <스위트홈>, <오징어게임> 등 한국이 만들어내는 문화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는 점도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투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익보다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기업가치 평가 행태도 M&A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쿠팡처럼 창업 후 10년 가까이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플랫폼 기업이 100조 규모로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신화를 쓰자, 한국 자본시장에도 ‘이익보다 규모’라는 형태의 M&A 방정식이 널리 퍼져나갔다. 너도나도 플랫폼을 표방하는 세상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처럼 겉으로 ‘규모’가 있어 보이는 회사는 많지 않다. 물론 대다수가 적자에 허덕이지만 말이다.
작지만 알찬 기업을 싸게 인수하는 합리적 M&A 방정식은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할수록 인수하는 회사의 몸집은 커 보이기 때문에, 커 보이는 기업을 비싸게 평가할수록 주목받는 것도 엔터테인먼트 M&A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다.
크게 보면 카카오, JTBC 등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하이브, 위즈윅스튜디오 등 상장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감독, 배우, 작가 등 일정 규모 이상의 IP를 보유한 기업들을 M&A하면서 몸집을 키우는 데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제작진영의 M&A는 소수의 대주주나 유명인에게 큰 부를 안겨줄 뿐, 업계 전체에 미치는 부의 효과는 미미하다. M&A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지만, 흔들림 없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국내 최대 플랫폼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M&A에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당장 36개 계열사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온 M&A 공룡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M&A 자금을 제공한 사모펀드 투자자들이나, 기업공개(IPO)를 통한 EXIT를 고대하고 있을 많은 피인수 기업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울 것 같다.
카카오, JTBC 등 M&A 열풍
플랫폼 카카오가 제작진영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약 36개를 M&A하면서 올해 초 출범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이 회사의 전신은 포도트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트리는 2010년 2월에 김범수 의장이 51.5%로 자본금 17억원 중 9억원 가까이 투자한 회사로 이후에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페이지가 된다. 그리고 국내 최대 음원서비스 회사인 로엔을 인수한 카카오엠과 합병하면서 올해 초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됐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페이지는 웹툰/웹소설을 제작하는 회사를 10여 개 인수했고, 카카오엠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M&A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을 영입,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M&A를 펼쳤다. 특히 카카오엠은 지난해부터 배우, 감독, IP가 있는 회사들을 단기간에 대거 인수했다. 대표적인 영화사는 윤종빈 감독의 <군도>, <공작>을 제작한 영화사 월광, <신세계>의 사나이픽처스뿐 아니라 최근 <마스터>, <살아있다>의 제작사 영화사 집까지 인수했다. 배우들의 경우에도 이병헌의 BH엔터, 공유·정유미의 숲엔터, 박서준의 어썸이앤티, 현빈의 브이에이에스티(VAST) 등을 인수했다. 인수한 계열 36개 회사 모두 현금 또는 주식을 지불하면서 사들였고 일부는 합병을 추진 중이다.
CJ계열의 스튜디오드래곤에 이어 JTBC계열 제작사 JTBC스튜디오도 M&A 행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JTBC스튜디오는 2019년 영화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를 312억원, 이재규 감독이 참여한 필름몬스터를 200억원, 하정우 배우가 참여한 퍼펙트스톰필름을 17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말에는 송강호 배우, 김지운 감독, 최재원 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한 앤솔로지스튜디오의 지분 100%를 200억원에 인수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프로덕션 에이치, 콘텐츠지음을 인수했다.
NEW 계열사 스튜디오앤뉴와 키움그룹 계열의 키다리스튜디오, 컴투스가 투자한 위지윅스튜디오도 자본을 조달해 M&A 행렬에 동참할 태세다. 플랫폼과 대기업 계열 스튜디오 너나없이, 크고 작은 엔터테인먼트 기업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에 한창인 모습이다.
사모펀드 투자유치와 EXIT 플랜
엔터테인먼트 M&A 행렬에 사모펀드의 참여가 활발한 점도 눈길을 끌 만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JTBC스튜디오 모두 사모펀드를 통해 조달한 외부자금을 중심으로 M&A를 추진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퀴티파트너스(앵커PE)로부터 33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JTBC스튜디오도 지난해 12월 한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과 중국 텐센트를 대상으로 4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처럼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EXIP플랜, 즉 기업공개(IPO) 작업이 수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 후 수년 내에 상장을 해서 팔고 나가는 게 사모펀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실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상장을 예정하고 있고, JTBC스튜디오도 투자 유치 당시 3~5년 내에 IPO하는 조건으로 자금을 수혈받았다.
급증하는 엔터테인먼트 M&A 방정식의 직접적인 해법은 IPO를 통한 EXIT뿐이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소설 분야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국정감사에서도 플랫폼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은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모두 사모펀드의 투자를 유치했고, 올해 말부터 줄줄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상장의 앞날은 사모펀드뿐 아니라 수많은 M&A 피인수 기업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일이다.
하이브, 크래프톤 등 너도나도 플랫폼, 규제 변화는?
먼저 상장한 엔터테인먼트 대어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크래프톤의 경우, 제작사지만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플랫폼 기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만큼, 비교 대상에 플랫폼 기업을 포함시켜 높은 가치평가를 유도한 경우다.
BTS 소속사 빅히트는 지난해 9월 IPO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밸류에이션 비교 기업 5개 중 카카오와 네이버를 포함시켰다. 위버스라는 신생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YG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제작사하고만 비교하지 말고,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들과 비교해달라는 의도였고, 실제로 공모가 산정 시 더 높은 가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최근 상장한 크래프톤의경우, 98년 역사의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룹인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게임 플랫폼 넥슨 3개사를 비교 기업으로 선정했다가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배틀그라운드라는 초우량 게임을 갖고 있지만, 플랫폼과 다른 IP사업은 이제 막 시작한 걸음마 단계기 때문. 논란 이후에 크래프톤은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로 비교 대상을 바꿨다.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핀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 중 하나가 미국 민주당 바이든 정부의 플랫폼 규제 태세 변화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한 연방거래위원회(FTC)위원장으로 만 32세의 젊은 여성 리나 칸을 임명했는데, 그는 ‘빅테크 킬러’, ‘모노폴리(독점) 파이터’라 불릴 정도로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M&A에 비판적인 인물이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의 손길이 뚜렷해질 경우, 플랫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엔터테인먼트 M&A의 방정식은 어떤 변수를 맞게 될까. 당장 내년 상장을 목표로 해온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규제의 손길 앞에서 플랫폼 기업일까? 엔터테인먼트 기업일까? M&A 열풍 속에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앞날에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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