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 관계 개선 밑돌 반세기 쌓은 한반도 평화 설계자"

유강문 2021. 10. 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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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
제23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재미 학자로 50여차례 북한 방문
세계 유수 언론 인터뷰·기고 통해
북한에 대한 편견 걷어내는 데 기여
지금도 한반도 평화 온라인 활동
재단 25주년 기념식에선
설립 헌신 고 김철호 선생 기려
문정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9월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제23회 한겨레 통일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동영상 화면)를 대리한 강주석 신부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미국에 체류 중인 박한식 명예교수는 동영상으로 “남과 북이 공유하고 있는 서로의 동질성을 학교 교육, 사회 교육,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알리고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통일 교육이고 이것이 바로 통일문화 조성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학자이자 실천가로서 반세기 가까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제23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99년부터 이 상을 시상해 온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주창하며 남북 및 북-미 관계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박 교수의 노고를 높게 평가해 이번 수상을 결정했다. 시상식은 미국에 있는 박 교수를 대신해 강주석 베드로 가톨릭 의정부 교구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9월30일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정연순 심사위원장(법무법인 경 대표변호사)은 이날 ‘심사 경과 및 선정 사유 보고’에서 “박 교수의 일생에 걸친 평화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고,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박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동영상과 글로 보내온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은 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애쓰고 있는 모든 분들께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박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강단과 북한을 오가며 오직 평화만이 겨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1981년 다른 재미 학자들과 함께 평양 땅을 밟은 이래 50여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책이 아닌 실제 체험을 통해 북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정 심사위원장은 “박 교수는 북한 외부 인사들 가운데 북한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학자로 손꼽을 수 있다”며 “북한 전문가로서 세계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 및 기고를 통해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을 걷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후 단순한 ‘북한 문제 전문가’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평화의 설계자’라는 더 큰 소임으로 나아갔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감돌던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성사시킴으로써 ‘평화’를 향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2009년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해 당시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기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내 북-미 관계 변화의 기회를 마련했다. 이런 공로로 2010년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했다. 박 교수의 평화의 여정은 ‘평화에 미치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2019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격주로 <한겨레>에 연재됐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정기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문정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도 이날 인사말에서 “평화가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평화를 찾아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박 교수의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고 말했다. 김현대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역시 축사에서 “평화의 기회가 여러 차례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좌절한 것은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분단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절실함보다 부족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며 “<한겨레>의 창간 정신을 되새겨 평화를 향한 도전에 더욱 용기 있게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통일문화상 후보에는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2023년까지 전세계 1억명의 서명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과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공동응원단 구성을 추진하는 ‘희망래일’ 등 두개 단체와 다섯명의 개인이 올랐다. 정 심사위원장은 “다른 후보들도 모두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바가 뚜렷해 상의 취지에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 특히 두 단체는 지금의 경색된 한반도 정세를 돌파하고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안아오기 위한 시의적절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결실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사위원회에는 김수권 전 핀란드 대사,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 최수산나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연합회 부장,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등이 참여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9월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창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날 시상식에 앞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창립 25주년 기념식이 진행됐다. 기념식에선 그간 재단의 활동을 돌아보고, 재단 설립의 밑돌을 놓은 고 김철호 선생의 뜻을 기려야 한다는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선생은 분단과 전쟁 희생자들의 유골이 방치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홀로 전남 구례에서 위령공원을 조성하다, 돌아가시기 전 이 땅과 현금 5억원을 기부했다. 서 교수는 “선생은 비싸고 좋은 음식은 찾지 않으시면서도 ‘뼈에는 색깔이 없다’(이념에 좌우되지 말고 전쟁 희생자들의 유골을 수습해 모셔야 한다는 의미)는 생각을 펼치시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재단은 최근 선생이 생전에 머물던 곳을 새롭게 정비하고, 이를 기념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이선재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국장 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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