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
팬데믹에도 美경제 꾸준한 회복
삶에 만족 미국인 90% 달하지만
선동정치 등 워싱턴은 엉망진창
언제든 '최강자 지위' 잃을 우려
이제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가 또 다른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중국 헝다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채를 짊어진 부동산 개발 업체로 미지급 채권만 3,000억 달러에 달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헝다그룹의 심각한 부채난이 세계 경제를 뒤집어놓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헝다그룹의 위기는 중국 경제의 결정적 취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국의 민간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국민총생산(GDP)의 260%를 웃돈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기초 성장 궤도는 둔화하고 있다. 임금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내수는 수출 호조를 대체하기에 충분할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구 고령화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출산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정부가 직접 나서 ‘한 가족 한 자녀’ 정책을 번복하고 출산을 장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출산율은 20%나 하락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모든 주요 경제국들이 어려운 문제를 끌어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난 16년간 현명한 지도력으로 독일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앙겔라 마르켈 총리가 집무실을 비운다. 대중주의 드라마와 분노, 격앙된 감정과 욕설이 난무하는 시대에 메르켈 총리는 고요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많은 경제 문제들을 곪도록 버려뒀다. 독일은 공공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고 모든 분야의 손상된 기반 시설을 그대로 방치했다. 제때 손보지 않은 독일의 연금 제도는 붕괴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다. 에너지 정책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핵 발전을 금지한 독일은 국내 전체 발전량의 44%를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이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치에 해당한다.
보다 광범위하게 보면 독일은 아직도 디지털 시대의 느림보로 남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자동차·화학약품과 공작기계 등을 만들어내는 독일 제조업은 2차 산업혁명의 소산이다. 게다가 독일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지난해 독일 인구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중국과 독일은 예외적인 본보기가 아니다. 일본과 영국·인도 등 다른 주요 경제국들도 이들과 유사한 구조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은 달팽이걸음처럼 더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는 조만간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오늘날 중국은 인도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 거대한 경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영국은 현재의 연료위기가 보여주듯 앞으로 2~3년에 걸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제 미국의 사정을 살펴보자. 루치르 샤르마는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지난 10년간 확고부동한 슈퍼파워 경제 대국의 지위를 고수한 미국에 ‘컴백 네이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미국은 2008년의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꾸준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유발한 불황도 미국 경제를 뒷걸음치게 만들지 못했다. 세계 전체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년 전과 동일한 25%에 달한다. 미국 대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전례 없는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명단에는 무려 7개의 미국 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생명공학에서 미세공학과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미래 산업의 거의 전 분야에서 굳건한 선두를 지키고 있다. 달러화는 다른 통화가 누리지 못했던 글로벌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국제 거래의 90%가 달러화로 결제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5대 경제 대국 가운데 가장 건강한 인구를 거느리고 있다. 물론 이민 덕분이다.
미국인들도 막연하나마 이를 감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은 정기 서베이를 통해 미국 전체 인구 중 ‘번영’을 누리는 사람들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올여름에 나온 대답은 13년 전 서베이가 시작된 후 최고치인 59%를 기록했다. 2020년 1월에 나온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90%가 그들의 삶에 만족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역시 1979년 해당 문항이 서베이에 추가된 뒤 나온 역대 최고치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치 상황은 엉망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극적인 소란 없이는 국가신용카드 고지서조차 납부하지 못하다. 그들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이 시급한 국책 사업이라며 지지를 표명한 국가기간시설 지출안을 놓고 소모적인 신경전을 펼친다. 기반시설확충안이 일반인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치권은 막무가내다.
의회는 지난 25년간 법정 시한 내에 정기 예산안을 처리한 적이 없다. 수백 개에 달하는 행정부의 요직이 여전히 비어 있고 이들 중 수십 개는 고위 공직자 인선과 무관한 이슈로 상원의원들에게 볼모로 잡힌 상태다. 양 대 정당 중 한 곳은 선동적인 지도자의 부추김을 받아가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가능케 하는 법과 제도와 규범을 흔들려 든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은 2024 대선에서 또다시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제까지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 최강자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포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알 듯 게임을 엉망으로 하면 언제건 모든 것을 잃기 마련이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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