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비용의 거래가 되면 안 될 '탄소 중립'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화두를 던진 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이 글로벌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시대를 맞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30개 이상의 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과장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로 정의된다. 환경 및 자연자원의 보존과 함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응축한 용어다. 그리고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실질 배출량 제로를 꾀하는 것으로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세계위험보고서를 통해 극단적인 기후변화나 생물 다양성 파괴, 천연자원 위기 및 대응 실패 등 환경 문제가 감염병이나 대량살상 무기와 같이 엄청난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를 지속해서 발신하고 있다. 탄소 중립이 모두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본모습을 드러낸다면 큰 위협이 되는 소위 ‘회색코뿔소(gray rhino)’와 같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선 환경 문제에 적절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환경에 대한 도덕적인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고,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것은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됐다. 그래서 각국 정부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도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동참하거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는 등 지구환경 측면에서나 세계 경제에 있어서나 긍정적인 변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국내에서도 일고 있다. 지난해 말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2050 탄소 중립위원회가 출범한 바 있다. 10월 말에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이 발표될 예정으로, 현재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다.
본연의 목적인 ‘지속가능한 성장’ 상기해야
다만,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 이런 변화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현 가능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만들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설령 해결되더라도 탄소 중립과 이의 달성을 위한 비용(경제적∙사회적)과의 균형은 또 다른 문제다. 탄소 배출량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하는 석유화학 업종이나 철강업 등의 경우, 원료 대체,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등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비용만 해도 수백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탄소 중립 실현에 매몰되면 주요 기간 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더군다나 탄소 중립 실현은 사회적 합의라는 큰 문턱을 넘어야 한다. 환경 보전이라는 도덕성을 우선시하는 소수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다면, 도덕과 비용 간 거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용이 들더라도 도덕적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탄소배출에 대한 면죄부를 손에 쥐기 위해 감내하기 힘든 경제·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이른바 ‘도덕의 거래(virtue merchandising)’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 약속한 탄소 중립 실현까지 약 30년이 남았다. 서둘러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실천해야만 하지만 탄소 중립으로 가는 과도기적 대안을 포함해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달성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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