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59> 'K골프 산업'의 개척자 김준오 ㈜브이씨 대표] 보이스캐디 신화, '그린' 손금 보듯 알려주는 AI 캐디로 진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퍼팅 그린에서 양손으로 두 눈 주위를 감싸고 그린을 읽는다. 양손이 만드는 ‘터널 효과’를 통해 햇살의 반사나 혼란한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집중력을 높여 그린을 읽기 위해서다.
박세리와 캐리 웹(호주)은 퍼터를 오른손에 들고 한쪽눈을 감은 뒤 그린을 읽는 ‘측량추법(플럼버빙)’이란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홀 주변 경사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확인하는 데 효과가 있다.
카밀로 비예가스(콜롬비아)는 거미처럼 납작 엎드려 그린을 읽는 스타일로 ‘스파이더맨’이라 불렸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이렇게 그린에서 공을 들이는 건 퍼팅 라인을 읽는 게 그만큼 어렵고 또 승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본 퍼팅 라인을 놓고 다시 캐디와 상의해서 최종 결정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수첩 크기의 야디지북을 참고한다. 야디지북에는 그린의 등고선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선수와 캐디는 대회 전에 미리 공을 굴려보면서 미세한 부분까지 메모해놓는다.
주말 골퍼는 엄두 내기 어려운 이런 정교한 그린 읽기 작업을 첨단 디지털 제품이 대신해준다면. 지난 8월 나온 ‘보이스캐디 야디지북’은 세계 정상급 선수와 베테랑 캐디가 수십 년에 걸쳐 쌓은 노하우로도 얻기 어려운 데이터를 ‘요술램프’처럼 제공한다.
연습 데이터 분석해 실전에서 클럽 추천
4.3인치 LCD(액정표시장치) 디스플레이에 코스매니지먼트를 위한 전반적인 코스 정보뿐 아니라 실물처럼 입체적인 형태로 그린을 보여주는 3D 그린, 정확한 핀 위치를 보여주는 APL(Auto Pin Location), 58단계의 리얼 그린 언듈레이션, 퍼팅 브레이크, 경사도 등을 보여준다.
10년 전 처음 음성 안내 골프용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인 ‘보이스캐디’를 사용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서울 사무실에서 보이스캐디와 보이스캐디 야디지북 개발자인 김준오 (주)브이씨 대표를 만났다. 회사 이름 브이씨는 밸류 크리에이터(value creator)의 영문 약자로 골퍼들이 골프를 더욱 잘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2005년 무선통신용 반도체 개발·설계 전문 기업으로 출발했다. 취미 삼아 만든 ‘보이스캐디’가 대박이 나면서 디지털 스포츠 테크 회사로 변신했다.
그는 골프와 스포츠 IT 분야의 애플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혁신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런 꿈의 출발은 많은 골퍼에게 ‘추억의 상품’으로 남아있는 초기 보이스캐디 제품이었다. 모자 챙에 볼 마커(그린에서 볼의 위치를 표시하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붙인 보이스캐디 버튼을 누르면 그린까지 거리를 음성으로 알려주던 제품. 지금 생각하면 초보 기능이지만 캐디에게 일일이 거리를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편리함을 제공하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의 혁신 제품이었다.
보이스캐디는 ‘골프용 내비게이션’이다. 위성으로 골퍼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보이스캐디안에 내장된 골프장 코스 정보를 이용해 현 위치에서 그린까지 거리를 계산해 알려준다.
그의 말이다. “미국에서 유학 시절 캐디 없이 골프를 칠 때 골프용 GPS를 사용하곤 했다. 당시 PDA 타입의 골프용 GPS는 부피도 크고 위치를 확인하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값도 300~400달러씩 했다. 국내에서 골프를 치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모자에 볼 마커를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최대한 제품 기능을 간소화해 부착용 제품을 만들고 값도 8만~9만원으로 했다. 당시 선물용으로 인기였던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한 상자 가격에 가깝게 만들었다.”
2011년 출시 첫해 약 10만 개, 56억원어치를 팔았다. 회사에 경리 직원이 한 명이었는데 “통장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와 무섭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세 경쟁 업체가 등장하고 화면 모니터가 있는 타사 제품에 밀려났다. 보이스캐디는 2014년 시계 형태의 보이스캐디 제품과 레이저 거리 측정기, 휴대용 론치 모니터 등 3개의 제품을 동시에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다. 2016년 그린 언듈레이션을 볼 수 있는 시계 형태의 제품이 다시 홈런을 치면서 1위 자리를 되찾았다.
2014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보이스캐디는 세계 시장에서도 짧은 시간에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의 사용률이 99%에 달하는 ‘부시넬’과 경쟁하면서 2019년 ‘500만달러(약 60억원) 수출탑’을 수상했다. 올해 수출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돌파했다. 임원급 직원이 미국에 상주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400억원이었던 브이씨의 올해 매출은 500억원으로 예상된다. 직원은 자회사까지 140명으로 50% 이상이 연구진이다. 거의 전 직원이 회사의 자체 골프 아카데미를 다니며 골퍼의 입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보이스캐디의 경쟁 업체는 해외의 부시넬, 트랙맨뿐만 아니라 국내의 골프존, 카카오 등 버거운 상대들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저희가 더 순수하게 골퍼를 위한 고민을 하는 회사”라며 “골퍼의 입장에서 골프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브이씨가 많은 돈을 들여 전국 골프장으로 늘려가는 APL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핀에 칩을 심어 실시간으로 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는 “빅데이터 시대에 골퍼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무한대로 늘고 있다. 코스에서 APL 서비스가 이뤄지면 빅데이터의 정확성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다”고 했다.
단적인 예가 그린이다. 정확한 핀 위치를 기준으로 그린의 지형 데이터를 결합해 아주 노련한 캐디의 조언처럼 그린 형태와 퍼팅 브레이크, 스피드, 경사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빅데이터 기반 ‘AI 캐디’를 내놓을 예정이다. 브이씨는 필드용 거리 측정기(레이저형, GPS시계형)와 연습용 론치 모니터를 함께 만들고 있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까지는 연습했던 데이터와 필드에서의 데이터 두 개를 연결하는 커넥티비티(connectivity), 즉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서비스는 연습 때 얻은 자신의 샷 정보와 이전 필드에서 축적된 정보를 함께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라운드하는 코스의 특색을 분석하고 동시에 연습과 필드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떤 클럽으로’ ‘어떤 구질로’라고 클럽 선택과 코스 공략법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PGA투어의 베테랑 캐디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골리앗들과 싸워 온 ‘K골프 산업’의 개척자인 김 대표는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늘 즐거운 골프 라이프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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