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확진 20대 아들 재택치료 하라고요?"

이재호 2021. 10.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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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재택치료 기준 불명확 현장 혼란
"50살 미만 3인이하 가구" 관련 커뮤니티엔 '위반' 사례들 올라와
한 집 동거인 '돌파감염' 우려 불안..전문가 "지침 정밀하게 손봐야"
4일 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한 시민이 입구에 설치된 손소독제를 지나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마포농수산물시장 관련 확진자가 3명 늘어 누적 확진자 수가 41명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담당자가 ‘재택치료’를 하라고 해서 황당했다.”

지난달 30일 아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중인 ㄱ씨는 방역 당국으로부터 아들의 ‘재택치료’를 권고받는 과정에서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고 4일 <한겨레>에 털어놨다. 서울에 사는 ㄱ씨는 30일 오전 출근길에 아들의 확진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밀접접촉자 자가격리 지침’만을 전달받았다. ㄱ씨는 곧 아들이 격리시설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역 보건소에선 “감염병 전담병원에 자리가 없다”며 ㄱ씨의 아들에게 재택치료를 권했다. 그리곤 재택치료를 시작한지 3일이 지나도록 별다른 지침을 주지 않았다.

20대 초반인 아들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쳐서인지 증상이 경미했으나, 고위험군인 80대 노모와 한 집에 두는 것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ㄱ씨는 돌파감염을 우려해 일단 어머니의 거처를 옮긴 뒤 방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 확진 판정을 받고 사흘 만인 2일 저녁, 아들은 생활치료센터로 떠났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ㄱ씨는 아들이 생활치료센터로 옮긴 날로부터 추가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ㄱ씨는 “언론에서는 병상과 생활치료센터에 여유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정부는 자리가 없다며 재택치료를 하라고 했다”며 “아들이 완치 때까지 재택치료를 했다면, 나는 아들이 완치된 이후 다시 2주간 자가격리를 당했을 것”고 분통을 터트렸다.

보건당국의 통계를 보면 지난 1일 1361명이었던 재택치료 환자는 3일 2451명으로 이틀 만에 두배 가까이 빠르게 늘었다. 누적 재택치료 환자 수는 6143명으로 경기도가 3781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 1375명, 대전 505명, 인천 144명, 강원 67명, 충남 55명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경기도 제2호 특별생활치료센터(재택치료 연계 단기진료센터)로 운영되는 수원시 경기도인재개발원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병상의 모습. 경기도청 제공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코로나) 방안으로 ‘재택치료’를 확대하고 나섰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준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의료진들은 갑작스런 재택치료 확대에 각 지방자치단체의 준비가 부족했다며, 당국이 지금이라도 현장을 점검하고 지침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어떤 경우에 재택치료를 받는지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추석 연휴 이후 하루 확진자가 늘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선 확진자 상당수가 병상을 찾지 못하고 2∼3일씩 재택대기를 하는 분위기인데, 확진자들은 ‘재택대기’와 ‘재택치료’의 차이조차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ㄴ씨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4인 가구로, 최근 첫째 자녀와 함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역 보건소로부터 ‘재택치료를 신청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남편과 둘째가 확진될 경우 재택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건지 불안하다. 현재까지 정부는 ‘50살 미만 3인 이하 가구에 대해 재택치료를 한다’고 밝힌 상태인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족이 네명인데 재택치료를 받았다’는 사례도 올라와있다.

재택치료 확대와 함께 최근 잇따르고 있는 돌파감염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서울에 사는 주부 ㄷ씨는 “백신 접종을 완료해도 확진자랑 같이 살면 돌파감염이 될 것 같다”며 “재택치료를 하라는 것은 사실상 함께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감염되라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재택치료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지금이라도 재택치료 지침을 정밀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재택치료와 관련해 현장에선 대혼란을 겪고 있는데, 재택치료 환자 상황 악화 모니터링 체계와 이송체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재택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이 제각각이어서 정비가 필요하고, 가족 구성원 중에 고위험군이 있으면 재택치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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