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국가보안법 철폐 대행진을 시작하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5일부터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전국대행진을 시작한다.
이번 대행진은 지난 5월20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에 열흘 사이 10만명이 참여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는데도, 국회가 다섯달째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출발하게 됐다.
전국의 수많은 양심과 함께하게 될 이번 열흘간의 전국대행진은 국가보안법 철폐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을 외면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채찍이자 힘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재하 | 국가보안법 철폐 전국대행진단 공동단장
5일부터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전국대행진을 시작한다. 이번 대행진은 지난 5월20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에 열흘 사이 10만명이 참여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는데도, 국회가 다섯달째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출발하게 됐다.
제주에서 출발하여 부산, 울산, 경남과 여순항쟁 지역, 광주 망월묘역, 대전 골령골 등을 거쳐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이어지게 될 이번 대행진은 국가보안법의 질긴 역사가 우리 민족과 민중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함께 느끼는 여정이 될 것이다. 대행진을 제주 4·3기념관에서 시작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과거 이승만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을 빌미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베껴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제주 4·3항쟁에 대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말도 못 하게 하고 이름도 붙이지 못하게 만든 게 이 법이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여야 하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헌법 위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라는 책을 펴냈는데, ‘헌법 위의 악법’이라는 표현도 사실 부족하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양심 위에 있기 때문이다. 시중 서점에선 버젓이 팔고 있는 책이 진보적인 활동가가 가지고 있으면 죄가 되는 법이다. 민주와 진보를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은 사상이 불순하기 때문에 죄가 된다는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그래서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가보안법은 사람의 생각과 양심을 사법부가 예단하여 인신을 구속하고 마치 사지를 자르듯 사회적 관계도 잘라버린다. 정권과 몇몇 재판관이 판단하는 ‘엿장수 가위법’이다.
국가보안법의 또다른 폐해는 기득권 체제와 정권에 대한 반대를 외치면, 이 법을 근거로 무조건 처벌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바라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외치건, 자주와 평화통일을 주장하건, 노동과 인권을 요구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땅의 기득권층은 국가보안법과 공안 기관을 무기로 많은 국민한테 피해의식과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국가보안법 하나면 많은 게 해결됐다.
국가보안법은 법이자 체제이다. 단순한 법조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을 심각한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체제 자체를 상징한다. 이 법으로 생기는 트라우마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의도된 인재이며, 일부가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심각한 트라우마다. 직접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법 앞에선 누구라도 피해자한테 곁을 주고 따뜻한 말조차 건네기 힘들었다. 양심을 숨겨야 했고 비겁해야 했다. 언론계와 학계 또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의 기나긴 역사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보안법이 대한민국의 체제 안전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거짓이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친일세력들을 옹호하고 반정부·반체제 인사를 억누르기 위한 법이었다. 국가보안법 역시 친일과 친미로 이 오랜 불평등 공화국에서 이득을 취해온 자들을 지켜주는 데 그쳤다.
전국의 수많은 양심과 함께하게 될 이번 열흘간의 전국대행진은 국가보안법 철폐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을 외면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채찍이자 힘이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그 어느 법보다 치열하다. 기득권층의 반발도 심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역사가 곧 한국 사회의 역사이고, 이 법의 문제가 곧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뛰어넘어야 한다. 용기를 갖고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란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유동규팀 ‘대장동’ 공모지침안, 확정 하루 전에야 담당부서 넘겼다
- 팔순 노모 같이 사는데, 확진 20대 아들 ‘재택치료’ 하라고요?
- 페북·인스타·와츠앱, 동시다발 ‘먹통’…개발자조차 서버 접근 못해
- 대장동 의혹을 즐겁게 관전하는 법
- [단독] 아동학대로 송치된 유치원까지 ‘우수’ 준 서울시교육청
- 윤석열 “위장당원들 엄청 가입”…경쟁자들 “당원 모독”
- 홍준표 “저 X, 줘팰 수도 없고”…하태경 “막말병 도져”
- 온도·촉각 등 ‘감각의 비밀’ 밝힌 미국 두 과학자 노벨생리의학상
- ‘도심공공주택’ 증산4구역, 조합원 부담금 평균 1억4000만원 줄어
- “조폭 잡을 때 행동대장만 구속하나”… 국민의힘, 이재명에 총공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