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안동도 “딸이 더 좋아!”
딸만 둘 둔 종갓집 장손이 “아들 낳아 대를 이으라”는 집안 어른들 압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한 달간 고기만 먹고, 아내는 같은 기간 채소·과일만 먹은 후 합방하라’는 민간 처방을 받아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만취해 귀가한 날,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낳아보니 딸이었다. 1990년대 초, 딸 셋 둔 타사 기자가 신세 한탄하듯 들려준 얘기다. 박완서 소설 ‘꿈꾸는 인큐베이터’(1993년)는 그 시절 셋째 딸을 임신했다가 시어머니·시누이 강요로 낙태수술 받은 여자의 내면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여자는 자기 몸이 인큐베이터 취급당한 것에 분노해 시댁과의 인연을 끊다시피 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아 선호가 여전히 강했다. 자연 상태에서 남녀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7명인데, 1990년 전국 평균 수치 116.5명으로 성비 불균형이 최고를 기록했다. 유교 전통이 강한 경북 지역은 130명까지 치솟았다. 그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꾸준히 개선됐고, 지난해 104.8명으로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도시가 경북 안동이다. 안동은 조선 후기 양반가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조상 제사를 모시는 종택(宗宅)이 즐비하다. 반드시 장손이 대를 이어야 했다. 그런데 올 8월 조사해보니 남아 260명과 여아 251명이 태어나 출생아 남녀 차이가 9명에 불과했다. 79명이었던 2016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 속도다.
▶딸 둔 아빠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이 ‘키우는 재미’다. 필자의 딸도 그런 재미를 준다.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아빠 생일에 축하금 봉투를 내놓는다. 딸보다 다섯 살 많은 아들에겐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 여행에 동행하고 휴일 산책에 말동무가 되어주는 쪽도 딸이다. 남들도 그렇다고 한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나만 낳으면 딸’이란 생각도 자리 잡고 있다. 딸 낳는 한약까지 먹는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변화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노부모 돌보는 ‘아들 노릇’은 딸도 참여하는 ‘자식 노릇’으로 바뀌고 있다. 결혼한 딸이 부모 옆에 살면서 ‘출가외인’은 아들 빼앗긴 부모가 하는 푸념이 됐다. 대부분 아들이 잔정 없고 무뚝뚝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건 다르지 않다. 아빠와 축구 하며 땀 흘리고, 엄마 대신 무거운 짐 들어주는 건 아들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자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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