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제와 20년 인연… 소리 공부 매진해 또 도전할 것

광주광역시/김성현 기자 2021. 10.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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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부 최우수상 최잔디씨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방일영상)을 받은 소리꾼 최잔디씨. /김영근 기자

제29회 임방울국악제 최우수상(방일영상)을 받은 소리꾼 최잔디(33)씨는 이번이 국악제와 세 번째 인연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제6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중등부에 처음 나가서 금상(광주광역시교육감상)을 받았다. 고교 3학년 때인 2005년에는 다시 고등부에 나가서 금상(광주광역시장상)을 받았다. 중등부와 고등부에 이어서 명창부까지 20년째 대회와 차례로 인연을 맺은 셈이다. 최씨는 “그리 길지 않은 제 ‘국악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임방울국악제를 통해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3대째 국악의 대를 잇고 있다. 설장구(농악대의 장구 리더)의 최막동 명인이 할아버지, 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최연자 명창이 고모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최씨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했고, 일곱 살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가 먼저 ‘국악 학원에 보내달라’고 어른들께 졸랐다”고 말했다.

초등생 때부터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보성 서편제 축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등에서 입상하며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고(故) 성창순(1934~2017) 명창을 15세 때부터 사사했다. 국악 집안의 국악 신동이었던 셈이다. 국립국악고를 거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소리 외길’을 걸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한예종에 들어간 뒤부터 방황이 시작됐다. 최씨는 “국악 한길만 걷다 보니 오히려 마음속에서는 그만두거나 쉬고 싶다는 반감이 쌓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예종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8년간 소리를 쉬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보컬 트레이닝 강사로도 활동했다.

2015년 뒤늦게 학교로 돌아와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오랫동안 쉬었더니 그만큼 절실함이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국립국악원에서 판소리 ‘심청가’ 완창 발표회도 열었다. 임방울국악제는 완창 발표에 이은 두 번째 도전 무대가 된 셈이다. 현재 모교인 국립국악고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다시 소리 공부에 매진해서 언젠가 대회에 재도전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제29회 임방울국악제 수상자]

▲판소리 명창부▷대상(대통령상) 이경아▷최우수상(방일영상) 최잔디▷우수상 박은정▷준우수상 허정승

▲판소리 일반부▷최우수상 김기진▷우수상 한윤경▷준우수상 이진주

▲가야금병창▷최우수상 이래경▷우수상 윤세인▷준우수상 이선화

▲농악▷대상 농암회▷최우수상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우수상 지산농악보존회▷준우수상 오복농악단

▲시조▷최우수상 박향임▷우수상 추유권▷준우수상 노미순

▲무용▷최우수상 류지운▷우수상 이수지▷준우수상 이유준

▲기악▷최우수상 박경빈▷우수상 최하연 ▷준우수상 허정민

▲퓨전 국악▷최우수상 랑▷우수상 앙상블카덴차▷준우수상 부나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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