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대법원은 신뢰 지켜야 할 사회의 마지막 보루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1. 10. 5. 03:04
전 대법관과 '화천대유' 대주주 면담 논란
대법원 주요 결정 전후 8차례 만남 문제
자산관리 경험 없는 기자 출신이 대주주인 회사
대형 부동산 개발사업자 선정될 나라 거의 없어
대법원은 단순 공공기관 이상의 권위 지켜야
대법원 주요 결정 전후 8차례 만남 문제
자산관리 경험 없는 기자 출신이 대주주인 회사
대형 부동산 개발사업자 선정될 나라 거의 없어
대법원은 단순 공공기관 이상의 권위 지켜야
법조기자 출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권순일 전 대법관의 만남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이들이 만났는지를 두고도 진술이 오락가락한다. “대법원에 이발하러 갔다”고 했다가 “3, 4번은 동향이라 인사차 만났다”고도 했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만약 만남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회복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어떤 대법관이었을까? 필자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바 있다. 유사한 판결을 한 대법관들에게 유사한 점수가 부여되도록 하는 문항반응모델을 적용하여 각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통계적으로 추정했다.
권 전 대법관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대법관이 됐다. 2014년 한 번이라도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두 번째로 보수적인 판결을 했다. 2015년에도 전체 16명의 대법관 중 3번째로 보수적이었다.
반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던 2019년에는 13명의 대법관 중 7번째로 보수적인 대법관에 해당해, 정확히 중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신’이었다.
‘변신’ 이후로 권 전 대법관은 이재명 지사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의 ‘키맨’이 됐다. 당시 이 지사 사건도 권 전 대법관을 제외하면 5 대 5로 팽팽하게 갈려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런 ‘키맨’인 권 전 대법관이 경기 성남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컨소시엄에 참여하던 김 씨를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된 시점을 전후해 8회 만났다는 것이 논란의 내용이다. 그것도 이 지사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기 전날과 전전날, 그리고 선고일 이튿날 만났다면 잠재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당시 김 씨가 현직 법조기자로서 어떻게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부동산 개발 컨소시엄의 자산관리회사 대주주가 되어 대장동 개발 같은 규모의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진보든 보수든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 대기업, 정보기술(IT)기업 등의 임원으로 옮길 때마다 기자정신을 저버린 처신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나마 그들은 김 씨와 비교하면 기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취업 사례로 볼 여지라도 있다.
반면 법조기자가 부동산 개발 컨소시엄의 자산관리회사 대주주를 겸한 것은 김 씨가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것이다. 자산관리 경험이 전무한 ‘글쟁이’ 출신이 대주주로 있는 자산관리회사를 포함한 컨소시엄이 대장동 개발과 같은 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될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지적은 되풀이되고 있다. 일부 언론인의 일이기는 하지만, 김 씨 같은 사례는 그가 화천대유 대주주인 것만으로도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건 대법원이다. 필자는 2017년 공공기관 평가 설문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51.3%로 33개 조사 대상 중 6위였다. 10.9%의 긍정 평가를 받아 최하위를 기록한 국가정보원, 29.9%로 28위를 기록한 검찰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역대 정권에서 권력 수호에 동원된 역사가 있다. 만약 김 씨와 권 전 대법관의 만남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과거 국정원과 검찰의 오명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대법원은 그냥 공공기관 중 하나가 아니다. 정치권에는 음모와 암투가 난무하고 언론은 진보-보수로 나뉘어 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곤 한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공공 분야 어디에서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만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기업과 일반 시민들은 양 진영의 ‘여론몰이’ 십자포화에서 혼란만 거듭하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대법원이다. 하지만 전직 언론인 김 씨와 권 전 대법관의 만남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그 마지막 보루마저도 무너졌음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권 전 대법관은 어떤 대법관이었을까? 필자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바 있다. 유사한 판결을 한 대법관들에게 유사한 점수가 부여되도록 하는 문항반응모델을 적용하여 각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통계적으로 추정했다.
권 전 대법관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대법관이 됐다. 2014년 한 번이라도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두 번째로 보수적인 판결을 했다. 2015년에도 전체 16명의 대법관 중 3번째로 보수적이었다.
반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던 2019년에는 13명의 대법관 중 7번째로 보수적인 대법관에 해당해, 정확히 중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신’이었다.
‘변신’ 이후로 권 전 대법관은 이재명 지사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의 ‘키맨’이 됐다. 당시 이 지사 사건도 권 전 대법관을 제외하면 5 대 5로 팽팽하게 갈려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런 ‘키맨’인 권 전 대법관이 경기 성남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컨소시엄에 참여하던 김 씨를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된 시점을 전후해 8회 만났다는 것이 논란의 내용이다. 그것도 이 지사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기 전날과 전전날, 그리고 선고일 이튿날 만났다면 잠재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당시 김 씨가 현직 법조기자로서 어떻게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부동산 개발 컨소시엄의 자산관리회사 대주주가 되어 대장동 개발 같은 규모의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진보든 보수든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 대기업, 정보기술(IT)기업 등의 임원으로 옮길 때마다 기자정신을 저버린 처신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나마 그들은 김 씨와 비교하면 기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취업 사례로 볼 여지라도 있다.
반면 법조기자가 부동산 개발 컨소시엄의 자산관리회사 대주주를 겸한 것은 김 씨가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것이다. 자산관리 경험이 전무한 ‘글쟁이’ 출신이 대주주로 있는 자산관리회사를 포함한 컨소시엄이 대장동 개발과 같은 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될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지적은 되풀이되고 있다. 일부 언론인의 일이기는 하지만, 김 씨 같은 사례는 그가 화천대유 대주주인 것만으로도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건 대법원이다. 필자는 2017년 공공기관 평가 설문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51.3%로 33개 조사 대상 중 6위였다. 10.9%의 긍정 평가를 받아 최하위를 기록한 국가정보원, 29.9%로 28위를 기록한 검찰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역대 정권에서 권력 수호에 동원된 역사가 있다. 만약 김 씨와 권 전 대법관의 만남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과거 국정원과 검찰의 오명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대법원은 그냥 공공기관 중 하나가 아니다. 정치권에는 음모와 암투가 난무하고 언론은 진보-보수로 나뉘어 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곤 한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공공 분야 어디에서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만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기업과 일반 시민들은 양 진영의 ‘여론몰이’ 십자포화에서 혼란만 거듭하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대법원이다. 하지만 전직 언론인 김 씨와 권 전 대법관의 만남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그 마지막 보루마저도 무너졌음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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