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선 연인, 집에선 부부 "24시간 베스트 파트너죠"
유니버설발레단(UBC)이 10월 29~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젤’을 공연한다. 시골 처녀 지젤이 약혼녀가 있는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 낭만 발레. 지젤은 1막에서 결국 배신당해 미치고 죽음에 이르며, 2막에서는 유령이 돼 알브레히트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UBC 자료를 읽다 수석 무용수 손유희(36)·이현준(35)에게 눈길이 붙잡혔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현실 부부의 최강 케미스트리’라고 적혀 있었다. 둘은 결혼 10년 차. 부부가 함께 ‘지젤’의 주인공으로 파드되(2인무)를 추기는 처음이다. 무대에서는 속이고 상처 주고 미치고 죽고 폭풍이 지나가지만 공연이 끝나면 뭔 일 있었냐는 듯 손을 잡고 귀가할 것이다. 손유희·이현준은 “결혼과 출산 후 정신력이 강해졌고 춤도 편안해졌다”면서도 “연애 감정을 끄집어내는 게 숙제”라고 했다.
◇지젤 데뷔 손유희 “행복한 고통”
이현준(이)=UBC 레퍼토리엔 나쁜 남자가 많아요.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드, ‘오네긴’의 오네긴, ‘라 바야데르’의 솔라르···.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몇 번 경험했는데 나쁜 남자여도 애착이 갑니다. 제가 무뚝뚝한 외모와 진한 눈썹 덕을 좀 봐요.
손유희(손)=2012년에 결혼하고 미국 털사발레단에서 5년 같이 활동했고 2018년에 쌍둥이를 낳았어요. 그 바람에 지젤 데뷔가 늦었지만 꿈꾸며 기다려온 배역이에요. 지젤은 클래식 발레에서 유일하게 미치는 연기를 해요. 그 매드 신(mad scene)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행복한 고통이랄까, 표현하기 어렵지만 기대돼요.
이=알브레히트 경험자인 제가 ‘이렇게 미치면 어떨까’ ‘좀 더 미쳤으면 좋겠는데’ 식으로 참견할 예정입니다(웃음). 배역에 몰입은 하겠지만 ‘배우가 먼저 울면 정작 관객은 울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해요. 알브레히트 연기요? 바람둥이처럼 가볍게도 해봤고 깊은 사랑을 잃고 후회하는 쪽으로도 해석해 봤는데 이번엔 비밀입니다.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잖아요.
손=2막에선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서 흰 베일을 쓰고 춤추는 윌리(유령)들의 군무가 아름다워요. 중력이 느껴지지 않게 점프해야 해요. 무게감 없이 떠다니는 것처럼요. 무용수는 늘 바닥을 느껴야 한다고 배웠는데 ‘지젤’은 거꾸로예요. 호흡과 상체 표현으로 바닥을 지워야죠.
◇이현준 “알브레히트는 애정하는 나쁜 남자”
이 부부, 아내는 무던하고 남편은 예민하다. 24시간 붙어 있는데 불편하진 않을까. 손유희는 “예민한 내 성격이 싫어 의식적으로 무던해졌는데, 예민하고 잔소리 많은 남자를 만났다”며 “부부 싸움을 해도 공연할 땐 내려놓고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이현준은 “저는 마음에 앙금이 있는데 와이프는 역시 프로”라고 했다.
손=발레리나로서 ‘결혼·출산=은퇴’라는 등식을 제가 깬 것은 아녜요. 임혜경 선생님 등이 먼저 그 길을 외롭게 가셨으니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출산하고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고요.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니까 돌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처하는 힘이 생겼어요.
이=UBC 수석 무용수가 모두 유부남·유부녀라는 사실 아시나요? 책임감이 커져서 그런지 “연기의 깊이가 달라졌다”는 말도 들어요. 하하하. 쌍둥이 딸·아들이라 장모님이 도와주시는데 누구라도 아프면 집안이 안 돌아가요.
손=발레리노는 발레리나의 중심을 잘 파악해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남편은 집에서도 잘해요. 결혼 전에 파드되를 할 땐 사실 좀 의심이 있었거든요. 이젠 내 몸을 편안하게 맡기고 제 춤에 더 집중해요. 파트너라기보다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다른 동료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와이프가 파트너일 때 더 잘해줍니다. 제 덕에 빛이 나야 하니까요. 베스트 파트너라 장점이 많은데 단점인들 왜 없겠어요. 더 신경 쓰고 봐줘야 하기 때문에 사실 1.5배 더 힘듭니다. (황급히) 그래도 마누라랑 춤추는 게 제일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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