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97] 10월의 부드러운 햇살 아래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1. 10.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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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로이 페렌치, ‘10월’, 1903년, 캔버스에 유채, 126.5×107㎝, 부다페스트 국립 미술관 소장.

흰 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마당에 나와 앉았다가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파라솔 그늘에 선 채로 신문을 읽는다. 테이블에 놓인 찻주전자와 사과에 손을 대보면 가을볕에 익어 따뜻할 것 같다.

멀리 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은 카로이 페렌치(Károly Ferenczy·1862~1917)가 살던 집 마당이다. 빈에서 태어난 헝가리인 페렌치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미술가 아내를 만나 화가가 됐다. 파리에서 미술 학교를 다니다가 뮌헨으로 옮겨 거기서 활동하던 젊은 헝가리인 화가들과 의기투합해 1896년 당시 나기바냐라고 하던 헝가리 도시에 ‘예술가 마을’을 만들었다. 예술 학교가 따로 없던 헝가리에서 ‘나기바냐 예술가 마을’은 주민들의 열렬한 관심과 성원 속에서 젊은 미술가들이 모여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표현주의 등 서유럽에서 탄생한 회화 양식을 배우고 실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교가 됐다. 중세부터 광업이 발달한 나기바냐는 2차 대전 이후 루마니아 영토가 되면서 명칭 또한 바이아마레로 바뀌었지만 ‘나기바냐 예술가 마을’은 여전히 헝가리와 루마니아 현대 미술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광산이 땅속에 파묻힌 보석을 캐내는 곳이라면, 수많은 화가를 배출한 ‘나기바냐 예술가 마을’ 또한 광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1906년 부다페스트로 이주할 때까지 나기바냐에서 페렌치는 실내 화실이 아닌 야외의 햇빛 아래서 바로 그림을 그리는 자연스러운 풍경화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이 부드러운 햇빛 속에서 어우러져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는 계절, 10월의 공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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