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유럽 태양광 1등국의 이면

손진석 파리 특파원 2021. 10.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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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태양광 패널 단지/PV매거진

지난 7월 첫 주에 이탈리아 남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한여름이 되기 이전인데도 기온이 40도에 육박했다. 살이 타는 듯했다. 코로나가 염려돼 야외에서 식사를 했는데, 햇빛이 워낙 강렬해 아침조차 밖에서 먹는 게 고역일 정도였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나무가 듬성한 산에 태양광 패널이 제법 보였다. 이런 나라가 태양광 발전에 제격이다 싶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태양광 1등 국가다.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원 중 태양광 비율이 유럽에서 제일 높다. 문제는 그게 작년 기준으로 9.7%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이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지만 아직 태양광으로 전력을 10분의 1 이상 만들어내는 나라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문제가 생길 때 근본 원인이 변화의 속도인 경우가 있다. 이탈리아는 탈원전을 전광석화처럼 끝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생기자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의했다. 그리고 1990년 모든 원자로 가동을 멈췄다.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직후 정부가 원전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1960년대 초반부터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한 나라다. 이런 역사를 3년 만에 깡그리 지웠다. 이탈리아보다 7년 먼저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의한 스웨덴이 아직도 원전에 30% 이상 의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G7에서 원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는 나라는 이탈리아뿐이다.

탈원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역설의 연속이다. 일단 에너지 주권을 상실했다. 신재생에너지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탓에 천연가스에 전력 생산의 45.6%를 의지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소비하는 천연가스 중 국내 생산분은 8%뿐이다. 러시아·알제리·카타르에서 들여와야만 한다.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에너지 대란으로 직결된다. 요즘이 그렇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제멋대로 줄이는 바람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탈원전을 했지만 이탈리아가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안 쓰는 것도 아니다. 전력 수급에 애를 먹는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전체 전력 공급량의 1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수입한 전기의 5분의 2는 프랑스·스위스의 원전에서 보내주고 있다. 결국 이탈리아는 환경부 장관이 최근 원전을 재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자는 대의가 틀렸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속도를 살펴야 한다. 지금 이탈리아인들은 천연가스값 폭등의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전기요금 급등이 불가피한 차디찬 겨울이 예고돼 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이탈리아는 태양광을 하기에 한국보다 훨씬 여건이 좋은 나라다. 이런 나라가 탈원전 이후 어떤 속앓이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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