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와 울산바위를
내가 활동하고 있는 등산 소모임 단톡방에 ‘설악산에 단풍이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9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다. 통계상 설악산 단풍 절정은 10월 중순이지만 북쪽에서 소리 없이 남하한 단풍이 어느새 설악산까지 점령했다는 데에 새삼 세월의 속도를 실감했다. 단풍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자신의 때에 맞춰 어김없이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기다려주는 법 없이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은 단풍만이 아니다. 다시 설악산으로 오면, 이 산에는 8000m급 고산 등정 산악인보다 강인하게 진격하는 원정대가 있다. ‘봉정암 할머니’들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모신 법당)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봉정암. 이 절에 깃든 신묘한 기운을 만나기 위해 불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봇짐을 메고 해발 1244m의 산을 오른다.
문득 6년 전, 지극한 불심 못지않은 간절함을 땀처럼 뚝뚝 흘리며 울산바위를 향하던 어느 이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바로 엄마.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그만 내려가자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좀처럼 듣지 않았고 욱신거리는 양쪽 무릎에 손수건까지 동여매고 기어이 울산바위 전망대에 올랐다. 그러고 헐떡이며 말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신 못 갈 것 같아서.”
다음에 또 오자며 웃었으나 6년 동안 우리는 정말 울산바위에 가지 않았다. 여전히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엄마. 하지만 인생의 이치가 그러하듯 엄마가 엄마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다려주는 법 없이 가야 할 길을 가는 엄마의 시간을 붙잡고 올가을에는 꼭 함께 울산바위에 올라 단풍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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