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보들레르와 악의 꽃
[경향신문]
보들레르의 <악의 꽃> 1857년 초판본이 새로 출간되었다. 표지의 범상치 않은 꽃 그림에 눈길이 먼저 갔다. 중앙에 그려진 복주머니난이 강렬하다. 이 그림을 보들레르가 요청했을까, 아니면 출판사의 제안이었을까. 젊은 날에는 어쭙잖게 시를 해석하느라 땀을 빼더니, 지금은 얼치기 기호학자가 되어 표지 그림 해석에 몇 날을 허비했다.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져도 그 배경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이리저리 꿰맞춰 보는 수밖에 없다.
복주머니난의 영어 이름은 ‘여인의 신발’인데, 아래쪽 꽃잎 형태가 여성의 신발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노랑복주머니난은 프랑스어로 ‘비너스의 신발’이다. 꽃말은 변덕스러운 미인이지만, 미국 시인 윌리엄 브라이언트는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표현했다. 그 꽃을 휘감아 오르며 유혹의 혀를 날름거리는 검은 뱀은 그의 뮤즈인 ‘검은 비너스’ 잔 듀발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 아래쪽에 그려진 시계꽃은 예수를 상징한다. 꽃 모양에 따라 우리는 시계꽃이라 부르지만,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와 연관된 꽃으로 해석한다. 빅토르 위고를 위시한 기존의 낭만주의와 기독교적인 시학을 상징한 것인가, 아니면 종교에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보들레르의 심상을 표현한 것일까.
한편 보들레르가 서거한 후 1900년에 출간된 <악의 꽃> 표지에도 역시 복주머니난이 그려져 있다. 속표지에 그려진 복주머니난은 스위스 화가 카를로스 슈바베의 작품인데, 매우 기괴하여 그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슈바베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주는 힌트를 따라 복주머니난의 수분 과정을 소개한다. 복주머니난은 아래 꽃잎이 주머니나 요강처럼 생겼다. 그 안에서 내뿜는 냄새와 꽃 색깔에 홀린 벌이 주머니 안으로 빠져 들어가면, 반대편 좁은 출구로만 탈출이 가능하다. 출구 주변의 햇빛을 따라 밖으로 나가던 벌은 끝에 나 있는 털에 의해 온몸에 묻힌 꽃가루를 몽땅 털린다. 바로 그 앞에는 암술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위로는 수술이 있어 탈출하면서 온몸에 새로운 꽃가루를 다시 묻히게 된다. 그렇다면 벌은 무엇을 얻었을까. 복주머니난은 벌에게 꿀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하지만, 사악한 전략인가! 그렇다면 복주머니난이 바로 ‘악의 꽃’?
아이러니하게도 복주머니난의 뿌리는 성적 탐닉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처방하기도 했다. 아름다움과 사악함, 그리고 신성을 상징하는 표지 그림.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언어들이 서로 상충하여 혼란스러운 내용만큼이나 난해하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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